10월 09일 (금)

이재명 정부와 샤쿤탈라의 반지

등록 :2026-09-17    조회수 101

칼럼니스트 간호윤

본문

고대 인도의 시인 칼리다사가 쓴 『샤쿤탈라』에는 ‘망각’이라는 무서운 장치가 등장한다. 두샨타 왕은 숲에서 샤쿤탈라를 만나 사랑하고 혼인을 약속한다. 왕은 궁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반지를 사랑의 증표로 남긴다. 그런데 샤쿤탈라는 사랑에 빠진 나머지 찾아온 성자(聖者) 두르바사를 제대로 맞이하지 못한다. 분노한 두르바사는 저주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를 잊을 것’이라고. 다만 ‘사랑의 증표’를 보게 되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두샨타 왕은 샤쿤탈라를 잊는다.



정권에도 ‘기억의 증표’가 있지 않을까. 이재명 정부의 기억의 증표는 무엇인가. ‘정의와 민주주의, 헌정질서 회복’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국회 앞에 섰고 광장에 모였다. 응원봉을 든 젊은이, 퇴근 뒤 달려온 직장인, 아이에 손을 이끌고 거리에 선 시민들이 있었다. 이듬해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 길고 긴 겨울을 지나 이재명 정부가 탄생했다. 그러므로 이 정부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보다 ‘국민이 왜 정권을 바꾸었는가’이다. 그런데 요즘 인사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쓰겠다고 한다. 좋다. 대통령은 자신을 찍은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다. 협치도 해야 하고 국민통합도 해야 한다. 능력이 있다면 출신 정당이나 지난 경력만을 이유로 배척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통합(統合)’과 ‘망각(忘却)’은 다르다. 지난 정권에서 권세를 누리던 사람들 가운데 정권이 바뀌자 어느새 새 정부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 숟가락을 얹는 이들이 보인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어제의 권력에서도 오늘의 권력에서도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그 혹독한 겨울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싸웠던 시민들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논공행상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광장에 나왔으니 벼슬을 달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사람에게 보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가치(價値)’에 보답하라는 것이다. 18세기 실학자 담헌 홍대용(洪大容, 1731~1783) 선생의 경고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담헌서(湛軒書)』 내집(內集) 권3 「여채생서(與蔡生書)」에서 당시의 탕평론을 비판하며 이렇게 썼다. “붕당의 화도 진실로 심하다. 그러나 탕평의 화는 붕당의 화보다 백 배나 더하여 반드시 나라가 망한 뒤에야 그칠 것이다. 아아,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朋黨之禍固甚矣 蕩平之禍 其百倍於朋黨而必至於亡國而後已 嗚呼其可畏也哉).”



그런데 이 문장만 떼어 읽으면 홍대용이 탕평 자체를 반대한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앞뒤 문맥을 읽으면 뜻은 훨씬 분명하다. 그는 “논의는 마땅히 바르게 해야 하고 편벽되어서는 안 된다(蓋論固當正 偏固不可)”고 전제했다. 문제는 탕평을 내세운다면서 옳고 그름을 뒤섞는 일이었다. 그는 “사악함과 바름을 뒤바꾸고 충성과 반역을 뒤섞어 함께 등용한다(變亂邪正 雜進忠逆)”면 결국 인심을 무너뜨리고 온 세상을 망가뜨린다고 경고했다.



사람을 두루 쓰는 것이 곧 탕평은 아니다. 시비를 분명히 한 뒤 당파를 넘어 인재를 쓰는 것이 탕평이다. 지난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을 쓰는 것 자체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물어야 할 것은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12·3 비상계엄 앞에서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했는가. 헌정질서가 흔들릴 때 침묵했는가, 저항했는가. 아니면 권력의 그늘 아래 자신의 자리를 지켰는가. 이것까지 묻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라는 말로 덮어버린다면 통합은 어느 순간 면죄부가 되고 탕평은 망각의 다른 이름이 된다.



더 무서운 것은 민심의 움직임이다. 정치는 빈자리를 오래 두지 않는다. 한쪽에서 사람이 빠져나가면 다른 쪽에서는 다시 뭉친다. 계엄과 탄핵, 대선 패배를 거치며 흩어졌던 전 정권의 지지 세력도 이미 30% 선으로 다시 결집하고 있다. 반면 그 높았던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 역시 30% 대이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30%로 뭉치기 시작했다면, 그 반대편에서는 누가 왜 떠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해방 뒤 우리는 친일청산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반면 프랑스는 해방 뒤 드골을 중심으로 비시 정권과 나치 독일 협력자들에 대한 청산에 나섰다.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친일 청산이 이토록 중요한 문제라고 절실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받은 교육에서도, 내가 읽었던 책에서도 그것이 오늘의 문제라고 절박하게 배운 기억이 없다.



이제야 깨닫는다. 청산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숨어서 다음 시대를 기다린다는 것을. 잘못하고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경험,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는 믿음, 권력이 바뀌면 다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처세가 하나의 정치문화로 똬리를 틀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앓는 병의 뿌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일제(日帝) 36년, 친일(親日) 청산(淸算) 미완(未完)’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용서’라는 말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용서는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상처라면 그 사람이 용서하면 된다. 그러나 국민이 함께 겪은 상처를 어떻게 한 사람이 대신 용서할 수 있는가. 12·3의 밤을 견딘 것은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사람들, 계엄군을 막아선 사람들, 추운 거리에서 몇 달을 버틴 국민이 함께 겪은 일이다.



그 기억은 어느 대통령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국정을 맡겼지, 국민의 상처를 대신 용서할 권리까지 맡긴 것은 아니다. 먼저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 그다음 용서할 것인지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책임도 묻기 전에 권력이 먼저 손을 내밀고 자리를 내어준다면 그것은 화해가 아니다.



묻고 싶은 것은 하나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12·3의 밤 무엇을 했는가. 헌정질서가 흔들릴 때 저항했는가, 침묵했는가, 아니면 권력의 그늘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는가. 이것을 묻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라는 이름으로 덮는다면 탕평은 면죄부가 된다.



『샤쿤탈라』에서 샤쿤탈라는 두샨타 왕에게 사랑을 받았다. 약속의 표현으로 반지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 사랑에 도취해 성자 두르바사에 대한 대접을 잊었다. 바로 거기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정치도 그렇다. 배신은 반드시 반대편으로 돌아서는 데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표를 주었는지를 잊는 순간에도 배신은 시작된다.



“우리가 그 겨울 왜 거리에 있었는가?” 이 질문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정권에서 가장 먼저 마음이 떠나는 사람은 처음부터 반대했던 사람이 아니다. 가장 간절하게 기대했던 사람이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크다. 지지했던 세력에서 민심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한다면 그 원인을 밖에서만 찾을 일이 아니다. 먼저 자기 손가락에 그 반지가 아직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b41a2-6aab55ba5909a-ce4f64e1472ed18caca31f5c175d7915ebcfa306.jpg
문학박사,인하대초빙교수 간호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