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기록의 내리막과 인생의 내리막

등록 :2026-09-11    조회수 120

본문

 

b41a2-6aa3696b59707-d407dbe22d7374e0d458c910f4e573271851777b.jpg
문학박사,인천대초빙교수 간호윤

 

 

 

 

2시간 24분 24초. 며칠 전 2026년 9월 6일 새벽강변국제마라톤대회 하프코스를 뛰었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너무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모두 마라톤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이 세상에는 마라톤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는 말도 있다. 인생과 마라톤이 도대체 무엇이 그리 닮았다는 말인가. 그런데 마라톤을 오래 뛰고 나이를 먹으니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마라톤은 인생을 닮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생이 마라톤을 닮았는지 모르겠다.

​

기록증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오래된 마라톤 기록철을 펼쳤다. 누렇게 변한 기록증들이 한 장 한 장 나왔다. 그럭저럭 내 마라톤 이력도 15년을 훌쩍 넘는다. …2017년 4월 9일 여의도 봄꽃 월드런 하프마라톤. 1시간 39분 13초. 2018년 3월 18일 서울국제마라톤 풀코스. 3시간 48분 50초. 같은 해 8월에는 갑비고차울트라마라톤 101km를 14시간 37분에 들어 왔다. 그때의 나는 달렸다.

 


b41a2-6aa36918325e0-501b29d254bf43318ccc2ccb9a2f46ca28267694.jpg​

 

하프를 1시간 40분 안에 들어왔고, 42.195km를 네 시간 안에 달렸다. 그것도 모자라 어느 날은 100km가 넘는 길을 밤낮으로 달렸다. 마라톤 기록표에는 52.5km, 67.1km, 77.1km, 90.4km, 96.6km가 빼곡히 적혀 있다. 저 숫자들을 내 두 발로 지나갔다.

​

그런데 엊그제 하프 기록은 2시간 24분이다. 9년 사이 45분이 늦어졌다. 숫자는 냉정하다. 1시간 39분이 2시간 24분이 되었다. 그래프를 그리면 선은 분명 아래쪽으로 향할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 나이도 나이 예순여섯이다. 이제 내 마라톤은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일까?

 

뛰고 들어와서-가을 하늘이 청명하다.



더구나 이번에는 몸이 먼저 대답했다. 결승선을 지나고 나니 오른쪽 무릎 안쪽이 몹시 아프다. 예전에는 풀코스를 뛰고도 다음 대회를 생각했는데, 지금은 하프를 뛰고 무릎을 들여다본다.


​

문득 옛날에 내가 쓴 블로그의 글을 찾아보았다. 마라톤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면서 글 속의 어휘가 달라졌다고 나는 적었다. 처음에는 ‘힘들다’, ‘기록’, ‘왜 저 사람보다 못 뛰나’ 같은 말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흐르자 ‘동호회’, ‘삶’, ‘자연’, ‘순간의 소중함’, ‘인생’, ‘희열’ 같은 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라톤과 인생이라는 비유를 그제야 조금 이해하겠다고 썼다. 그때쯤 마라톤 동호인들과 『해낸 사람들』이라는 책도 만들었다.

​

이제 읽어보니 지금보다 젊은 내가, 지금의 나에게 남겨놓은 편지 같다. 2023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강변에서 풀코스 4시간 30분을 목표로 출발했다. 연습도 하지 않았으면서 욕심을 내어 빠른 팀을 따라붙었다가 12km에서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오버페이스였다. 결국 뛰고 걷기를 반복했다. 기록은 5시간 14분 43초. 그날 나는 글 제목을 「5시간 14분 43초가 건네는 의미」라고 붙였다.

​

그런데 사람은 참 어리석다. 글로 깨달은 것을 몸으로는 자꾸 잊는다. 나는 예전에 “마라톤은 정의로운 운동”이라고 썼다. 배경도, 재산도, 학벌도 소용없고 오직 연습한 만큼 몸이 대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연습 없이 주로에 나섰다. 이제 거기에 한마디를 보태야겠다.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다. ‘연습’에 더욱이 ‘세월’까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순여섯의 다리는 쉰여섯의 다리가 아니다. 2018년의 심장과 2026년의 심장이 같을 리 없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연습 없이 옛 기록만 따라간다면 마라톤은 운동이 아니라 어리석음이 된다. 그렇다면 기록이 늦어졌다고 내가 퇴보한 것일까.

​

2017년의 나는 하프를 1시간 39분 동안 달렸다. 어제의 나는 2시간 24분 동안 달렸다. 시간만 보면 45분을 잃었다. 하지만 그 45분 동안 나는 아홉 해의 세월을 더 살아냈다. 그 사이 책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기뻐하고, 상처받고, 다시 출발선에 섰다. 그것까지 기록증에는 찍히지 않는다. 마라톤에는 두 개의 시계가 있다. 하나는 손목시계다. 초와 분을 잰다. 젊을 때는 이 시계와 싸운다. 4시간을 깨고, 1시간 40분을 깨고, 어제의 나를 이기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세월의 시계다. 이 시계에는 기록이 없다. 대신 아직 달릴 수 있는가를 묻는다.

​

예순여섯의 나는 첫 번째 시계에서는 자꾸 진다. 그러나 두 번째 시계에서는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 101km를 달리던 사람도 언젠가는 10km를 힘들어할 것이다. 10km를 뛰던 사람도 언젠가는 1km를 걸을 것이다. 어느 날에는 운동화 끈을 묶는 일조차 힘겨워질 것이다.

​

어디 마라톤뿐이랴. 누구에게나 한때는 거뜬했으나 이제는 버거운 일이 있고, 예전보다 느려진 무엇 하나쯤은 있다. 중요한 것은 빨리 가는 일이 아니라, 느려진 나를 데리고도 계속 가는 일이다.

​

그것이 패배일까. 마라톤의 진짜 반대말은 느림이 아니라 ‘멈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릎이 나으면 다시 운동화 끈을 묶으려 한다. 이제 1시간 39분의 나를 이기려고 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지나갔다. 따라잡을 수도 없고, 따라잡을 필요도 없다. 이번에 결승선을 통과한 2시간 24분의 나 역시 언젠가는 그리운 기록이 될 것이다. 인생이 마라톤이라면 결국 중요한 것은 최고 기록이 아니다.

​

오늘은 아픈 무릎에 찜질을 한다. 그리고 기록증 한 장을 기록철에 더 끼워 넣는다. 2시간 24분 24초. 기록은 분명 느려졌다. 그래도 아직, 나는 달리는 사람이다. 기록의 내리막이 곧 인생의 내리막은 아니기 때문이다.

 

 

uploaded_6aa367f5ce242.jpg
해낸 사람들, 마라톤을 이야기하다. 부천두발로마라톤 동호회2020예서
<해낸 사람들>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