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연재|K-Politics ] ② 대립정치의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 이분법의 함정과 양미론(兩未論)의 정치철학 —

등록 :2026-06-17    조회수 532

권추호 박사|『K-Politics』 저자

본문

정치의 대립은 겉으로는 정당과 정당의 싸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뿌리에는 더 깊은 사유의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현실을 쉽게 둘로 나눈다. 내 편과 네 편, 선과 악,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남과 북을 분리하고 자신이 선 자리를 옳음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런 사고가 정치 안으로 들어오면 상대는 함께 국가를 논의할 공적 주체가 아니라 꺾어야 할 적이 된다. 대립정치는 제도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과 언어 속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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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어려움은 이분법적 사고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었다는 데 있다. 해방과 분단, 전쟁과 냉전, 산업화와 민주화의 긴 역사를 거치며 한국 사회는 서로 다른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한쪽은 자유와 안보를 앞세웠고 다른 한쪽은 평등과 민주를 앞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차이는 건강한 논쟁이 아니라 진영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굳어졌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자기편의 기억을 방어하는 장이 된 것이다.

 

이분법의 가장 큰 위험은 현실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국가는 복잡한 생명체와 같다. 경제, 안보, 교육, 복지, 통일, 외교, 지역, 세대의 문제가 서로 얽혀 있다. 그런데 이 복잡한 문제를 좌냐 우냐, 보수냐 진보냐로만 나누면 답은 좁아진다. 자유가 필요할 때가 있고 평등이 필요할 때가 있으며 시장의 활력이 필요할 때가 있고 공적 조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현실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시험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묻는 과제이다.

 

양비론(兩非論)은 이분법을 넘어서는 듯 보이지만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양비론은 양쪽을 모두 비판한다는 점에서 균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그것은 양쪽 모두를 부정하는 태도에 머물기 쉽다. 보수도 틀렸고 진보도 틀렸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는다. 부정만으로는 국가를 세울 수 없고 냉소만으로는 국민을 통합할 수 없다. 양비론적 중도는 때로 책임 있는 대안보다 안전한 거리두기가 되기 쉽다.

 

K-Politics가 제시하는 대안은 양미론(兩未論)이다. 양미론은 ‘둘 다 틀렸다’가 아니라 ‘둘 다 아직 미완이다’라고 본다. 보수는 자유와 질서의 가치를 지키려 했지만 공동체적 배려가 부족할 수 있고, 진보는 평등과 개혁의 가치를 말했지만 현실 운영의 책임이 부족할 수 있다. 여당도 미완이고 야당도 미완이며 남한도 미완이고 북한도 미완이다. 양미론은 상대를 없앨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여 더 높은 질서로 나아갈 가능성으로 본다.

 

이때 필요한 것이 중립(重立)·중첩(重疊)·중화(重和)의 사유이다. 여기서 중립은 어느 한쪽에도 서지 않는 중립(中立)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를 함께 세우는 중립(重立)이다. 중첩은 대립하는 가치들을 단순히 섞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위치와 역할을 인정하며 겹쳐 보는 일이다. 중화는 그 겹침을 더 높은 조화의 질서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정치가 이 사유를 갖추면 보수와 진보는 제거의 관계가 아니라 보완의 관계가 되고 정당 간 경쟁은 파괴가 아니라 검증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대립정치가 형성되는 이유는 상대가 실제로 악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대를 악으로만 보도록 만드는 사유의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제도를 고쳐도 정치는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 정권이 바뀌면 복수가 반복되고 국회가 바뀌면 전선만 새로 그어진다. 그러므로 정치개혁은 선거제도나 권력구조 개편 이전에 국민과 지도자가 현실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새 정치문명은 새 사유 없이는 시작될 수 없다.

 

대한민국 정치가 대립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이분법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양쪽을 모두 부정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양쪽의 미완성을 인정하고 더 높은 공익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양미론의 정치철학이고 정도(正道)정치의 출발점이다. 정치는 적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K-Politics가 말하는 새 정치문명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둘 중 하나의 승리가 아니라 둘의 부족함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존의 질서가 대한민국 정치의 다음 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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