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제4부 // 공존체제의 경제와 복지는 어떻게 설계되는가 — 공생주의와 공영경제(共營經濟, Co-nomics)의 길 —   [제31편] 경제는 왜 공생의 질서가 되어야 하는가? — 경쟁의 경제에서 함께 사는 경제로 —

등록 :2026-09-29    조회수 218

『K-Politics』의 저자 권추호 박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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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숫자가 아니다. 경제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경제를 말할 때 성장률, 물가, 금리, 주가, 수출액 같은 숫자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숫자가 좋아졌다고 해서 국민의 삶이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성장 속에서 더 부자가 되지만, 누군가는 같은 성장 속에서도 더 불안해진다. 경제가 정말 건강한가를 보려면 통계표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보아야 한다. 경제의 목적은 숫자의 상승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질서의 형성이다.

 

지금까지의 경제는 너무 자주 경쟁의 언어로 설명되었다. 더 빨리 성장해야 하고, 더 많이 팔아야 하며, 더 강한 기업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해 왔다. 경쟁은 필요하다. 경쟁은 게으름을 깨우고, 창의를 자극하며, 사회에 활력을 준다. 그러나 경쟁이 경제의 유일한 원리가 되면 사회는 경기장이 아니라 생존의 전쟁터가 된다. 이기는 사람은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지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발판마저 잃는다. 경쟁은 경제의 엔진일 수 있지만, 경제 전체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는 본래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기업은 노동자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노동자는 기업의 생산 기반 없이 안정된 삶을 누리기 어렵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지역경제의 기반 위에서 성장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와 유통망이 있어야 일상의 필요를 채운다. 농촌과 도시, 수도권과 지방, 자본과 노동, 기업과 공동체는 따로 움직이는 섬이 아니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결국 다른 한쪽도 흔들린다. 경제는 혼자 사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사는 생태계이다.

 

공생의 경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생은 약자를 도와주자는 따뜻한 감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구조적 원리이다. 강한 기업이 약한 기업을 끝없이 압박하면 공급망은 결국 약해진다. 자본이 노동을 비용으로만 보면 생산의 기반이 흔들린다. 수도권이 지방을 흡수하기만 하면 국토 전체의 균형이 무너진다. 공생은 도덕적 장식이 아니라 경제의 생존 조건이다. 함께 살지 못하는 경제는 오래 살 수 없다.

 

자본주의는 생산력과 창의를 크게 발전시켰다. 시장의 경쟁은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만들었고, 개인의 도전은 경제의 활력을 키웠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자기 힘만을 절대화하면 양극화와 소외, 불안정한 노동과 지역의 붕괴를 낳을 수 있다. 반대로 사회주의는 공동체적 분배와 공공성을 강조했지만, 지나치게 중앙집중화될 때 자유와 창의, 효율을 약화시켰다. 두 체제는 모두 중요한 문제의식을 가졌지만, 어느 하나만으로 완전한 경제질서를 만들지는 못했다.

 

공생주의는 바로 이 미완의 두 경제관을 다시 보려는 원리이다. 자본주의가 가진 창의와 생산의 힘을 살리되, 그것이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주의가 말한 공공성과 분배의 책임을 살리되, 그것이 개인의 자유와 현장의 활력을 억누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생주의는 경쟁을 없애는 경제가 아니다. 경쟁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지 않도록 더 높은 질서 안에 배치하는 경제이다. 이익은 필요하지만, 이익만으로는 국가경제가 완성되지 않는다.

 

공생의 경제는 복지의 의미도 바꾼다. 복지는 단순히 어려운 사람에게 예산을 나누어주는 일이 아니다. 물론 직접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복지는 국민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지역에서 살아가며, 기업과 노동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가 불안하고, 지역이 무너지고, 중소기업이 버티지 못하는 사회에서 복지는 끝없이 사후처방이 된다. 공생의 경제는 문제가 생긴 뒤에 돈을 나누는 복지를 넘어, 국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경제 기반을 세우려 한다.

 

대한민국 경제가 새 단계로 나아가려면 경쟁의 힘을 부정하지 않되, 경쟁만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사고를 넘어야 한다. 경제는 승자를 더 크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삶을 지속시키는 질서여야 한다. 기업과 노동,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시장과 공공성이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고 함께 서야 한다. K-Politics가 말하는 공생의 경제는 성장과 분배를 따로 떼어놓지 않는다. 함께 살 수 있을 때 성장도 오래가고, 함께 성장할 때 복지도 지속된다. 경제가 공생의 질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혼자 이기는 경제는 강해 보일 수 있지만, 함께 사는 경제만이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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