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K-Politics ] [제30편] 정책 중심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 인물 중심 정치를 넘어 국가 로드맵 정치로 —
등록 :2026-09-23 조회수 518
『K-Politics』의 저자 권추호 박사
본문

정치가 사람 이름으로만 기억될 때, 국가는 자주 길을 잃는다. 누구의 정부였는가, 누가 이겼는가, 누가 배신했는가, 누가 다음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묻는 사이에 정작 더 중요한 질문은 뒤로 밀린다. 국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국민의 삶은 어떤 구조 위에 서야 하는가. 통일국가는 어떤 헌정질서를 준비해야 하는가. 정책 중심 정치는 바로 이 질문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인물은 필요하다. 국가는 책임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국민은 시대의 문제를 설명하고 결단할 수 있는 공적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물이 정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매력, 언변, 이미지, 상징성은 선거를 움직일 수는 있어도 국가를 오래 이끌 수는 없다. 인물 중심 정치는 순간의 열광을 만들지만, 정책 중심 정치는 지속 가능한 질서를 만든다. 정치는 인기의 무대가 아니라 국가운영의 설계도여야 한다.
정책 중심 정치는 공약을 많이 내놓는 정치가 아니다. 공약은 선거용 약속일 수 있지만, 국가 로드맵은 시대 전체를 읽는 설계이다. 교육개혁은 시험제도 몇 개를 바꾸는 일이 아니고, 경제개혁은 경기부양책 몇 개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복지, 연금, 지역균형, 산업전환, 외교, 안보, 통일은 모두 긴 시간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정책은 조각으로 나열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이 방향을 잡고, 제도가 틀을 만들며, 정책이 그 길을 실제로 걸어가게 해야 한다.
정책 중심 정치가 가능하려면 정당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정당은 인물을 띄우는 선거기계가 아니라 국가철학을 생산하는 공적 기관이어야 한다. 낡은 진영정당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 정책을 만들지만, 새 가치관 정당은 국가를 책임지기 위해 정책을 세운다. 공존주의·공생주의·공영경제·공민주의를 국가운영의 기본 방향으로 삼고, 국민통합과 공존통일, 체제복지와 세계평화의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정당은 지지층의 감정을 관리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미래를 설명하는 정책 공동체여야 한다.
권력구조도 정책 중심 정치와 연결된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정책이 대통령의 의중과 임기에 지나치게 묶이기 쉽다. 대통령이 바뀌면 정책의 이름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국가의 방향까지 흔들린다. 그래서 권력은 한곳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 역할에 맞게 배치되어야 한다. 정신적 지도자, 대통령, 책임총리가 각각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 가치관과 국민통합의 방향, 통일·국방·외교의 국가전략, 경제·행정·민생의 내치 운영을 나누어 책임지는 삼원집정부제의 구상은 정책을 사람의 기분이 아니라 국가의 구조 위에 세우려는 시도이다.
국회와 선거제도 역시 정책 중심 정치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국회가 진영의 전장이 되면 정책은 숙성되지 못하고 소모된다. 선거가 승패의 전쟁이 되면 국민의 뜻은 국가책임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국회는 국가의 장기 과제를 심의하는 기관이 되어야 하고, 선거는 권력을 차지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상원·중원·하원의 책임을 맡을 자격을 검증받는 절차가 되어야 한다. 하원은 국민 생활의 현장을 대표하고, 중원은 정책의 전문성과 조정 능력을 책임지며, 상원은 국가의 장기 방향과 통일국가의 큰 질서를 살펴야 한다. 이 구조가 설 때 국민의 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을 배치하는 힘이 된다.
정책 중심 정치는 통일국가를 준비하는 정치이기도 하다. 분단국가의 정치는 더 긴 시야를 가져야 한다. 남남통합, 통일준비헌법, 남북의 권력구조 조정, 경제통합, 안보와 외교의 재설계는 어느 한 인물의 결단이나 한 정권의 구호로 해결될 수 없다. 통일은 즉흥의 정치가 아니라 설계의 정치가 필요하다. 공존통일을 말하려면 공존의 헌정질서가 있어야 하고, 통일국가를 말하려면 그 국가를 운영할 정책과 제도가 준비되어야 한다. 국가 로드맵 없는 통일은 감동의 사건이 아니라 혼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가 새 단계로 나아가려면 이제 인물의 이름보다 국가의 길을 먼저 물어야 한다.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인가보다, 어떤 철학으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어떤 제도로 책임정치를 세우며 어떤 경제질서로 국민의 삶을 안정시킬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K-Politics가 지향하는 정책 중심 정치는 인물을 지우자는 정치가 아니라 국가를 앞세우자는 정치이다. 인물은 지나가지만 국가는 계속된다. 정권은 바뀌지만 국민의 삶은 이어진다. 그러므로 정치의 중심에는 사람의 인기보다 국가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대한민국 정치는 권력의 순환을 넘어 통일국가를 준비하는 국가적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