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토)

욕망이 전쟁이 될 때. 아름다움은 가장 치명적이다. 파리스와 헬레네가 남긴 정치의 비극

등록 :2026-08-18    조회수 123

정갑수

본문

 

트로이 전쟁의 시작을 우리는 흔히 한 문장으로 기억한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사랑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10년에 걸친 전쟁과 트로이의 멸망을 설명할 수 없다.

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욕망은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졌을까. 그리스 신화의 파리스와 헬레네 이야기는 이 질문에 놀라울 만큼 현대적인 답을 던진다.

사건의 출발점은 ‘황금 사과’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신들의 연회에 던진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다투자, 제우스는 판정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긴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서로 다른 것을 약속했다. 헤라는 권력을, 아테나는 승리와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했다.

파리스의 선택은 아프로디테였다.

그 순간 신화는 인간의 오래된 선택을 상징한다. 권력보다 사랑을, 능력보다 욕망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그가 선택한 사랑의 대상이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는 데 있었다.

그 여인이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였다.

파리스와 헬레네의 관계가 사랑이었는지, 아프로디테의 신적 개입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전승마다 다르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헬레네는 트로이로 갔고, 메넬라오스의 분노는 그리스 전체의 전쟁으로 번졌다.

여기서 개인의 욕망은 정치적 사건으로 변한다.

메넬라오스에게 헬레네는 단순히 사랑하는 아내가 아니었다. 왕의 명예였고, 국가의 체면이었다. 아가멤논을 비롯한 그리스의 왕들에게 트로이는 단순한 연적의 도시가 아니었다. 응징해야 할 적이 됐다.

사랑은 명예가 되고, 명예는 복수가 되고, 복수는 전쟁이 됐다.

이것이 트로이 신화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다.

정치는 욕망이 사라진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야말로 인간의 욕망이 가장 거대한 규모로 증폭되는 공간이다. 개인의 명예욕, 권력욕, 인정욕, 복수심이 국가의 제도와 결합하면 개인의 감정은 어느 순간 공동체 전체의 운명이 된다.

파리스의 잘못은 사랑한 것 자체가 아니다. 인간에게 사랑할 자유가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질서를 무시한 것이다.

메넬라오스 역시 다르지 않다. 헬레네를 되찾겠다는 개인적 욕망이 왕의 명예와 결합하면서 전쟁의 명분이 됐다. 그리고 그 전쟁에는 헬레네를 본 적도 없는 수많은 병사들이 동원됐다.

정치적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권력을 가진 개인의 사적인 감정이 공적인 결정으로 둔갑할 때다.

역사는 이런 비극을 반복해왔다. 한 지도자의 모욕감이 전쟁을 부르고, 한 정치인의 권력욕이 제도를 흔들며, 한 집단의 복수심이 사회 전체의 증오로 확대된다. 개인에게는 사소한 감정일지 모르지만, 권력과 결합하는 순간 그 감정은 수천, 수만 명의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는 인간을 성인군자로 믿지 않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인이 욕망이 없는 존재라고 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인 역시 욕망과 감정에 휘둘릴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욕망이 국가를 끌고 가지 못하도록 제도적 브레이크를 설치한다.

권력분립과 임기제, 사법적 통제,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 선거를 통한 책임정치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정치란 욕망이 없는 정치가 아니다. 욕망을 공적 책임의 틀 안에 가두는 정치다.

파리스에게는 아프로디테의 약속을 거절할 수도 있었다. 메넬라오스에게도 복수의 규모를 제한할 선택이 있었다. 그러나 신화 속 인간들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고, 결국 그 대가는 트로이의 폐허로 돌아왔다.

더 비극적인 것은 헬레네다.

그녀는 한편으로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욕망의 희생자였다. 『일리아스』의 헬레네는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낀다. 그녀는 단순한 ‘전쟁의 원인’이 아니라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간이다.

이 때문에 트로이 전쟁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의 욕망이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면, 그 욕망은 여전히 사적인 것인가?”

오늘날 정치에서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정치는 공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인간인 이상 사적인 욕망이 정치에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이다.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욕망,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욕망, 자신의 지지층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 과거의 적에게 복수하려는 욕망. 이런 감정들이 정책과 제도를 움직이기 시작하면 정치는 공공선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가 된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트로이는 결국 목마라는 기만적인 전략에 속아 성문을 열었고 멸망했다. 그러나 트로이를 무너뜨린 것은 목마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오래전부터 인간의 욕망과 오만, 명예와 복수가 도시의 운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트로이의 폐허를 바라보며 우리는 파리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비극은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욕망을 제어할 브레이크가 사라질 때 시작된다.

정치가 위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의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욕망을 제도 안에서 조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 사이에 균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파리스는 사랑을 원했다. 메넬라오스는 명예를 원했다. 아가멤논은 승리를 원했다. 신들은 아름다움과 권력을 겨뤘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한 사람의 욕망은 한 도시의 죽음이 되었고, 한 도시의 죽음은 인류에게 영원한 이야기가 되었다.

트로이의 폐허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말을 거는 까닭이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욕망을 곧 공익이라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그 오래된 진실을 알려준다.

개인의 욕망이 권력을 만나면 역사가 되고, 그 욕망을 제어할 지혜가 없으면 역사는 비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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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 정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