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영주읽기 ⑥ |무섬 외나무다리, 시대를 건너는 지조 ― 조지훈의 「지조론(志操論)」과 ‘처세론(處世論)’
등록 :2026-07-20 조회수 425
최홍식(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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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무섬마을 전경. 내성천이 무섬마을을 품듯 감싸 흐르고, 외나무다리가 백사장을 가로지른다. 강과 모래, 전통마을이 어우러진 무섬마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석 같은 문화유산이다.
강은 마을을 가르고 다리는 사람을 잇는다. 그러나 어떤 다리는 사람만이 아니라 시대와 정신까지 이어준다.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은 내성천이 삼면을 휘감아 흐르는 물돌이 마을이다. 실제 섬은 아니지만 물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여 ‘무섬’이라 불렸다. 고운 모래가 강물과 함께 흐르는 내성천, 그 물길 위에 가느다랗게 놓인 외나무다리는 이제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무섬마을의 역사는 1600년대 반남 박씨가 들어와 터를 잡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선성(예안) 김씨가 반남 박씨와 혼인해 들어오면서 두 문중의 집성촌이 됐다. 마을에는 흥선대원군이 쓴 ‘해우당(海愚堂)’ 편액을 비롯해 독립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던 아도서숙(亞島書塾) 등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들이 남아 있다.

1979년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외나무다리는 무섬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었다. 장을 보러 가는 사람도, 학교에 가는 아이도, 혼례를 치르는 신부도 이 다리를 건넜다.
무섬에는 “여자는 꽃가마를 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들어와, 죽어서야 꽃상여를 타고 다시 건너 나갔다”는 말이 전한다. 낯선 집안으로 시집온 여인은 시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키우며 한평생을 살았다. 꽃가마는 삶의 첫걸음이었고 꽃상여는 삶의 마지막 걸음이었다. 그러나 두 길은 모두 같은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무섬의 외나무다리는 한 사람의 시작과 끝을 모두 지켜본 삶의 다리였다.

무섬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처가가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영양 주실마을에서 태어난 조지훈은 무섬의 김난희와 혼인해 이 마을의 사위가 됐다. 그의 시 「별리」에 흐르는 이별과 기다림의 정서는 외나무다리를 건너와 한평생을 살아야 했던 무섬 여인들의 삶과도 겹쳐진다.
사람들은 조지훈을 「승무」와 「낙화」를 쓴 서정시인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시만 남긴 사람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자유당 독재를 거치며 지식인이 시대 앞에서 어떤 자세를 지켜야 하는지 물었다. 그 정신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글이 1960년 4·19혁명 직전에 발표한 「지조론(志操論)-변절자를 위하여」다.
조지훈에게 지조는 권력과 이익 앞에서도 순일한 정신을 지키는 고귀한 투쟁이었다. 그는 「지조론」에서 단언했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다.” 지조는 낡은 선비의 고집이 아니라 양심을 팔지 않는 지도자의 덕목이자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아테네라는 거대한 말을 잠에서 깨우는 한 마리 ‘등에’에 비유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더라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권력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를 깨우는 등에였다면, 조지훈은 변절의 시대를 깨우는 선비였다.
선비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선비는 권력자의 잔치에 불려가 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침묵할 때 옳고 그름을 말하는 사람이다. 선비의 고장일수록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지조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선비의 집과 현판은 많아도 정작 지조를 말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능력이라 부르고 금력 앞에서 침묵하는 것을 현실이라고 변명한다. 어제까지 정의를 말하던 입도 이해관계가 스치면 조용히 닫힌다. 그렇게 침묵은 신중함이 되고, 굴종은 화합이 되며, 변절은 처세가 된다.

조지훈이 오늘을 산다면 「지조론」의 속편으로 ‘처세론’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곧게 서는 법보다 적당히 몸을 낮추는 법이 지혜로 통하고, 옳은 방향보다 유리한 물길을 고르는 일이 영리함으로 평가되는 세태이기 때문이다.
외나무다리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다. 다리 위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면 한 사람이 물러서야 한다. 그러나 그 물러섬은 권력 앞의 굴종이 아니라 상대를 먼저 건너게 하는 배려다.
공자는 “당인불양어사(當仁不讓於師)”라고 했다. 인을 실천하는 일에서는 스승에게조차 양보하지 말라는 뜻이다. 외나무다리에서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해야 하지만, 불의 앞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양보하되 불의에는 양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조다.
삶과 죽음이 한 다리 위에서 이어졌듯, 지조와 처세도 결국 같은 삶의 길 위에서 갈린다. 우리 역시 언젠가 운명의 외나무다리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을 수 있다. 비 내리는 무섬 외나무다리 위로, 조지훈 선생의 준엄한 일갈이 내성천 물소리에 실려오는 듯하다.
“지조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