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영주읽기 | ⑤ 삼판서고택, 혁명가의 집에 혁명이 없다 ― 이름은 존재의 그릇이다
등록 :2026-07-14 조회수 414
최홍식(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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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도시는 저마다 하나의 기억을 품고 있다. 안동은 퇴계 이황으로 기억되고, 경주는 천년 신라의 고도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영주는 무엇으로 기억되어야 하는가. 나는 영주를 혁명의 도시로 읽고 싶다. 유학의 민본정치 철학을 현실의 국가로 구현한 역성혁명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의 출생지가 바로 영주이기 때문이다.
왕조는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정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도전이 바꾸려 했던 것은 왕이 아니라 시대정신이었다.
맹자가 제시한 민본정치와 역성혁명의 정치철학은 정도전에 이르러 비로소 현실의 국가가 되었다. 그는 새로운 왕조를 세운 개국공신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를 설계한 정치철학자였다. 그는 책상 위에서만 혁명을 말한 사상가가 아니었다. 부패한 고려 귀족사회의 모순과 수탈당하는 백성의 삶을 바꾸기 위해 권문세족과 권력자들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그 대가로 나주로 유배되기도 했다. 위화도 회군으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자 그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설계하는 혁명의 중심에 섰다. 혁명의 과정에서도 수차례 생명의 위기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국가, 조선을 건국했다. 그의 민본혁명 사상은 『조선경국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 첫 장 「정보위(正寶位)」에서 『주역』의 정치철학을 조선 건국의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천지의 가장 큰 덕은 만물을 살리는 데 있고(天地之大德曰生), 성인의 가장 큰 보배는 왕위에 있다(聖人之大寶曰位) 그 왕위는 인(仁)으로 지키고(何以守位曰仁), 백성은 재(財)로 모은다(何以聚人曰財).”
왕위는 권력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백성을 살리는 자리이며,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선언이었다. 그것이 정도전이 꿈꾸었던 조선이었고, 역성혁명의 철학이었다. 사상의 역사는 이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상은 책 속에 머물 때 이론이지만, 현실의 제도와 국가 속에서 구현될 때 역사가 된다. 정도전의 역성혁명은 유학 2,500년 역사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공맹이 유학의 민본사상을 정립했다면 정도전은 그것을 역사 속에서 실천했다. 따라서 정도전은 공자와 맹자에 버금가는 사상사적 위상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정작 그의 출생지에서도 삼봉 정도전이란 이름을 쉽게 만나기 어렵다. 그의 생가는 ’삼판서고택’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삼판서고택이라는 이름은 고려 말 형부상서 정운경, 그의 사위 공조판서 황유정, 외손 이조판서 김담으로 이어지는 보기 드문 가계를 담고 있다. 세 사람이 모두 판서를 지냈다는 사실은 후손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이 집의 역사적 의미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곳은 조선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이 태어난 곳이며, 유학의 정치철학이 현실의 국가로 구현되기 시작한 역사적 공간이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고 싶다. 이름은 존재의 그릇이다. 사람도, 도시도, 역사도 이름으로 기억된다. 이름은 존재를 드러내고, 기억은 존재를 완성한다.
’삼판서고택’이라는 이름은 판서를 세 명 배출한 명문가를 기억하게 한다. 그 이름만으로는 이 집에서 태어난 삼봉 정도전을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삼판서는 한 가문의 영예를 담은 이름이다. 정도전은 역성혁명과 조선의 건국, 그리고 유학의 정치철학을 현실의 국가로 구현한 시대의 정신을 담은 이름이다. 가문의 영예는 한 집안의 역사이지만, 정도전은 한 시대의 역사다.
이 집은 한 가문의 영예와 함께 시대를 바꾼 정신을 기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도시는 건물을 남기는 곳이 아니라 정신을 기억하는 곳이다. 영주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한 가문의 영예가 아니라 시대를 바꾼 정신이다.
1398년 왕자의 난으로 자신이 설계했던 조선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삼봉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념을 놓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자조(自嘲)」시에서 끝내 놓지 못한 것은 목숨이 아니라, 이상국가를 향한 그의 꿈이었다.
마음을 굳게 지키고 자신을 살피는 일에 평생 공력을 기울였고(操存省察兩加功)
성현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을 끝내 저버리지 않았네(不負聖賢黃卷中)
삼십 년 긴 세월 힘겹게 쌓아 온 공업이(三十年來勤苦業)
송정의 한 잔 술에 끝내 허사가 되었구나(松亭一醉竟成空)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허사가 아니었다. 조선은 그의 혁명을 증명했고, 『조선경국전』은 그의 사상을 증명했다.
도시는 건물을 보존한다고 기억되지 않는다. 정신을 기억할 때 살아남는다. 삼판서고택이라는 이름도 소중하다.
그러나 그 이름이 삼봉 정도전을 가리고 있다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한 집안의 미담을 기억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 시대를 기억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