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철학으로 영주읽기②|금성대군 신단 앞에서 — 살아서 진 자, 죽어서 이긴 자 —

등록 :2026-06-25    조회수 366

최홍식(철학박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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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신단 전경, 금성대군(1426~1457)은 세종의 여섯째 적자이자 단종의 숙부. 단종 복위 운동으로 순흥에 유배된 뒤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부사 이보흠과 지역 선비들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했으나 실패했고, 역모죄로 생을 마감한 뒤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했다. 이후 200여 년이 지나 숙종 대에 이르러 억울함이 신원되었고, 1693년(숙종 19) 순흥부사 정중창이 유배지에 처음 신단을 조성했다. 이후 1719년(숙종 45) 제단을 3단 형태로 정비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금성대군 신단에는 무덤이 없다. 왕자의 봉분도 없고 영웅의 전각도 없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를 견딘 비석 하나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은 조선의 어느 왕릉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살아서는 패배했으나 죽어서 다시 살아난 한 사람의 이야기 때문이다.

 

금성대군은 세종의 여섯째 적자였고 단종의 숙부였다. 왕좌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지만 끝내 권력을 선택하지 않았다. 계유정난 이후 세조가 권력을 장악하던 시대, 그에게도 다른 길은 있었다. 침묵하며 살아남는 길. 왕실의 일원으로 안락을 누리는 길.

 

그러나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형의 시대를 받아들이는 대신 어린 조카 단종의 편에 섰다. 순흥에 유배된 이후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고, 지역의 많은 선비들과 뜻을 모아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끝내 역모의 이름으로 생을 마쳤다. 그 시대의 승자는 세조였다. 궁궐의 불빛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고 역사는 한동안 승자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200여 년 뒤 숙종 대에 이르러 금성대군의 이름은 다시 불려 나왔다. 역적으로 남았던 이름은 절의를 지킨 사람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무덤조차 없었던 사람은 오히려 더 오래 기억되었다.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지사인인(志士仁人) 무구생이해인(無求生以害仁) 유살신이성인(有殺身以成仁)” 뜻 있는 사람과 어진 사람은 자기를 살리기 위해 인을 버리지 않으며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인을 이룬다.

 

금성대군의 삶은 어쩌면 『논어』가 말한 살신성인(殺身成仁), 곧 생명을 버려서라도 인을 이룬다는 가르침을 역사로 증명한 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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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신단에는 ‘유명조선 단종조충신 금성대군 성인신단지비(有明朝鮮 端宗朝忠臣 錦城大君 成仁神壇之碑)’이라 새겨져 있다. 명나라시기의 조선, 단종조 충신 금성대군의 살신성인의 뜻과 넋을 기리는 제단의 비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반면, 한명회는 살아 있는 동안 조선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세조의 왕권찬탈을 주도해 정난공신이 되었고 영의정에 올랐으며 왕실의 중심에 섰다. 두 딸은 각각 왕비가 되었고 그는 조선 최고의 외척 권력을 누렸다. 살아서는 모든 것을 얻은 듯 보였다. 그러나 인간의 높이는 벼슬이 아니라 시간이 결정한다. 두 딸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 역시 사후 부관참시를 당하며 생전과 다른 평가를 받았다. 

 

노자의 『도덕경』은 말한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부실(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글어 보여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권력은 이긴 자를 만들지만 시간은 옳은 자를 남긴다. 한 사람은 살아서 이겼지만 오래 남지 못했고, 한 사람은 살아서 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졌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저주스럽도록 자유로운 존재다.” 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하나의 선택이며,우리는 그 결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금성대군 역시 선택의 순간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왕좌에 가까이 있었지만 권력을 선택하지 않았고, 죽음에 가까이 있었지만 끝내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다시 살아난 사람이 되었다.


신단을 내려오는 길에 다시 비석을 돌아본다.

 

그곳에는 권력도 없고 승리도 없다. 오직 한 사람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양심만 남아 있다. 세조의 궁궐은 사라졌지만 금성대군의 이름은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 속을 걷고 있다. 역사는 때때로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의 편에 선다. 

 

그리고 신단 앞에 선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지금 내가 선택하고 있는 것은 성공인가. 아니면 훗날에도 남을 가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