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연재|K-Politics ] ③ 보수와 진보의 공존은 가능한가? — 공존주의(共存主義)가 여는 새로운 정치문명 —

등록 :2026-06-23    조회수 526

『K-Politics』의 저자 권추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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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에서 보수와 진보는 오랫동안 서로를 부정하는 이름처럼 사용되어 왔다. 보수는 진보를 국가를 흔드는 세력으로 보고, 진보는 보수를 낡은 기득권의 대변자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지켜야 할 가치와 바꾸어야 할 가치가 모두 필요하다. 보수 없는 진보는 뿌리를 잃기 쉽고, 진보 없는 보수는 미래를 잃기 쉽다. 문제는 보수와 진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할 미완의 가치로 보지 못하고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보는 데 있다.

 

보수의 본래 역할은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야 할 질서를 보존하는 데 있다. 국가의 안보, 법치, 전통, 책임, 공동체의 안정은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러나 보수가 과거의 질서만을 절대화하면 변화의 요구를 억누르는 힘으로 굳어질 수 있다. 현실의 고통과 불평등을 외면한 채 질서만을 말하면, 그 질서는 국민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기득권을 방어하는 성벽이 된다. 그러므로 보수도 완전하지 않다. 보수는 지킬 것과 고칠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진보의 본래 역할은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변화를 요구하는 데 있다. 불평등을 줄이고, 약자의 삶을 돌보며, 낡은 제도를 개혁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진보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다. 그러나 진보가 변화 자체를 절대화하면 현실의 질서와 공동체의 안정성을 가볍게 여기기 쉽다. 좋은 의도만으로 국가는 운영되지 않는다. 개혁은 책임 있는 설계와 지속 가능한 실행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진보도 완전하지 않다. 진보는 바꾸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함께 보아야 한다.

 

양미론(兩未論)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도 미완이고 진보도 미완이다. 보수가 틀렸고 진보가 옳다거나, 진보가 틀렸고 보수가 옳다는 식의 판단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든다. 보수는 공동체의 뿌리를 지키는 힘을 갖지만 미래 변화에 둔감할 수 있고, 진보는 사회의 아픔을 읽는 힘을 갖지만 제도 운영의 책임을 놓칠 수 있다. 둘은 서로를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정치의 성숙은 이 거울을 깨뜨리는 데 있지 않고, 그 거울을 통해 더 높은 질서를 찾는 데 있다.

 

K-Politics가 말하는 공존주의(共存主義, Co-existism)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필요하다. 공존주의는 보수와 진보를 적당히 섞는 중간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와 평등, 질서와 변화, 안정과 개혁을 각각의 자리에서 바로 세우고 더 높은 공익의 질서 안에서 조화시키려는 정치철학이다. 공존은 타협의 약한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강한 말이다. 공존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어느 한쪽 승리가 아니라, 둘의 미완을 넘어서는 제3의 성숙한 정치문명이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려면 먼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언어를 버려야 한다. 상대를 악으로 만들면 내 편은 언제나 선이 되고, 내 편의 잘못은 쉽게 정당화된다. 그러면 정치는 책임의 장이 아니라 명분의 전쟁터가 된다. 공존정치는 상대의 오류를 비판하되 상대의 존재 이유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 다른 의견은 국가를 파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국가의 길을 더 정확하게 찾게 해주는 검증 장치이다.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공익의 기준 아래 경쟁할 때, 대립은 파괴가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 된다.

 

공존주의는 남북문제와도 깊이 연결된다. 남한 내부에서 보수와 진보가 서로 공존하지 못한다면, 남북의 서로 다른 체제가 평화롭게 공존하기는 더욱 어렵다. 남남통합은 남북통일의 예행연습이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적으로만 보는 사회는 통일을 말해도 다시 분열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보수와 진보가 각자의 미완성을 인정하고 공존의 질서를 세울 수 있다면, 그 사회는 남북의 차이도 더 성숙하게 다룰 수 있다. 공존정치는 국내 정치의 과제이자 통일국가의 훈련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새 정치문명으로 나아가려면 보수와 진보의 싸움에서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보수의 책임성과 진보의 개혁성을 함께 살리는 일이며, 자유와 평등, 안정과 변화가 서로를 보완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공존주의는 낡은 진영정치를 덮는 포장지가 아니라, 새 국가질서를 세우는 철학적 기초이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할 수 있을 때 국민통합이 시작되고, 국민통합이 시작될 때 한반도의 공존통일도 현실의 길이 된다. 이것이 K-Politics가 공존주의를 새 정치문명의 첫 원리로 세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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