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수필가 정갑수
제국은 영토로만 확장되지 않는다. 타자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 방식에서 문명의 체질이 드러난다. 로마인과 아랍인의 문화 수용은 서로 다른 호흡법이었다. 하나는 넓게 들이마셨고, 다른 하나는 깊게 소화했다.
로마는 ‘포함’의 달인이었다. 정복은 파괴가 아니라 편입이었다. 그리스의 신들은 로마의 신전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불렸고, 지방의 관습은 제국의 법과 나란히 놓였다. 로마 시민권은 점진적으로 확장되며 타자를 내부로 끌어들였다. 이 거대한 기계는 다양성을 억압하기보다 관리했다. 도로와 법, 군대와 행정이 서로 다른 세계를 하나의 틀에 묶었다.
이 방식의 미덕은 명확하다. 속도와 안정, 그리고 관용. 로마는 서로 다른 문화를 빠르게 ‘같이 살게’ 만들었다. 그러나 함께 산다는 것이 곧 서로를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로마의 포함은 층층이 쌓인 지층처럼 병존을 허용했지만, 그 층들을 녹여 하나의 새로운 물질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리스의 사유는 존중되었으되 로마의 권력 논리를 근본에서 바꾸지 않았고, 동방의 신앙은 공존했으되 제국의 중심을 재구성하지 못했다.
결국 로마의 강점은 동시에 취약점이 되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은 그릇은, 충분히 섞지 못하면 쉽게 갈라진다. 제국 말기, 다양한 문화는 통합되지 못한 채 느슨하게 연결되었고, 위기 앞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할 내적 응집력이 약해졌다. 포함은 평화를 유지했지만, 위기를 견디는 깊이를 보장하지는 못했다.
아랍 문명, 특히 이슬람 세계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들은 ‘소화’의 기술을 연마했다. 정복 이후의 진정한 작업은 번역과 해석, 그리고 재구성이었다.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에서 그리스 철학은 아랍어로 옮겨지며 단순한 보존을 넘어 새로운 사유로 다시 태어났다. 페르시아의 행정, 인도의 수학, 헬레니즘의 의학은 이슬람적 세계관 속에서 서로를 비벼가며 하나의 체계로 엮였다.
소화는 불편하다. 외부의 것을 받아들일 때, 내부의 기준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신학과 철학은 자주 부딪혔고, 전통과 혁신은 긴장 속에서 공존했다. 그러나 바로 그 마찰이 열을 만들었다. 그 열로 아랍 문명은 지식의 새로운 합금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라 창조자였다. 받아들인 것을 변형하고, 변형된 것을 다시 세계로 내보냈다.
단정해 말하자. 로마는 세계를 ‘넓혔고’, 아랍은 세계를 ‘깊게’ 만들었다. 로마의 포함은 질서를 세웠고, 아랍의 소화는 의미를 길어 올렸다. 하나는 공존의 기술이었고, 다른 하나는 변형의 예술이었다.
오늘 우리의 풍경을 돌아보면, 로마의 속도에 더 가까워 보인다. 우리는 빠르게 포함한다. 유행은 번개처럼 번지고, 외래의 형식은 지체 없이 복제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얼마나 소화하고 있는가. 얼마나 재구성하고 있는가. 얼마나 우리 자신의 문장으로 다시 쓰고 있는가.
포함은 문을 여는 일이다. 소화는 그 집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문만 열어둔 집은 바람에 흔들리기 쉽다. 구조를 바꾼 집만이 계절을 견딘다.
가끔은 이런 농담이 떠오른다. 우리는 세계를 ‘구독’하고는 있지만, 아직 ‘이해’는 결제하지 않은 상태가 아닐까. 로마의 길 위에서 멈출 것인가, 바그다드의 서재로 더 들어갈 것인가. 선택은 여전히, 그리고 조용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