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토)

[연재|K-Politics ] ⑭ 공존체제는 왜 성숙기의 과정체제인가? — 제왕적 대통령제를 넘어서는 국가운영 원리 —

등록 :2026-07-29    조회수 436

『K-Politics』의 저자 권추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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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체제는 완성된 사회체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완성기의 전제군주제에서 완성기의 민주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성숙기의 과정체제이다. 인간이 보호받는 유년기를 지나 곧바로 완전한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듯, 사회도 지배의 질서에서 곧바로 완성된 자유민주주의로 뛰어갈 수 없다. 그 사이에는 서로 다른 가치와 제도가 충돌을 멈추고, 각자의 역할을 배우며, 더 높은 조화의 질서로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존체제는 바로 그 성숙기의 이름이다.

 

공존체제를 단순한 중간지대나 타협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중간이라는 말은 흔히 양쪽의 힘을 조금씩 덜어내어 적당히 섞는 것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공존체제는 어느 한쪽을 약화시켜 무색의 중간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자유는 자유대로, 평등은 평등대로, 권위는 권위대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대로 각자의 의미와 역할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이 가치들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더 높은 질서 안에 배치하는 일이다. 공존은 약한 절충이 아니라 성숙한 조화이다.

 

자유와 평등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자유만을 절대화하면 강자의 자유가 사회 전체를 흔들 수 있고, 평등만을 절대화하면 개인의 창의와 자율이 위축될 수 있다. 공존체제는 자유와 평등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자유가 공동체적 책임을 잃지 않도록 하고, 평등이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지 않도록 조정한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 싸울 때 사회를 분열시키지만, 함께 설 때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균형을 동시에 지킬 수 있다.

 

권위와 민주도 마찬가지이다. 권위는 독재가 되면 국민을 억압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면 국가의 장기적 책임과 질서가 약해질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을 실현하지만, 성숙한 책임 구조가 없으면 단기 여론과 진영정치에 흔들릴 수 있다. 공존체제는 권위를 되살려 국민 위에 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권위가 가진 지속적 책임성과 민주주의가 가진 국민주권을, 절대가치가 성숙기의 시대정신에 맞게 구현된 새 가치관 아래 조화시켜, 권력 독점도 막고 무책임한 혼란도 막으려는 과정적 정치질서이다.

 

경제에서도 공존체제의 의미는 분명하다. 시장경제는 창의와 경쟁을 통해 생산력을 키우지만, 방치되면 양극화와 소외를 낳을 수 있다. 계획경제는 공공성과 균형을 추구하지만, 과도하면 비효율과 통제로 흐를 수 있다. 그러므로 21세기의 경제는 시장이냐 계획이냐의 선택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공영경제(共營經濟, Co-nomics)는 시장의 활력과 계획의 책임을 함께 경영하려는 공존체제의 경제적 표현이다. 경제도 대립이 아니라 역할분담의 질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공존체제가 성숙기의 과정체제인 이유는 그것이 완성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존체제는 완전민주체제를 대신하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오히려 완전자유민주주의로 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훈련의 장이다. 국민은 자유를 누리면서 책임을 배워야 하고, 정당은 경쟁하면서 공익을 배워야 하며, 지도자는 권한을 행사하면서 공적 소명을 배워야 한다. 서로 다른 가치가 함께 서는 훈련 없이 완성된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이 과정은 남북통일의 문제에서도 결정적이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다른 체제와 역사, 가치와 상처를 갖고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흡수하거나 굴복시키는 방식은 새로운 분열을 낳을 수 있다. 공존체제는 남과 북이 각자의 차이를 인정한 채 더 높은 통일국가의 질서로 나아가게 하는 과정적 틀이다. 통일은 하루아침에 하나가 되는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체제가 공존과 조정을 거쳐 성숙해지는 역사적 과정이다.

 

대한민국이 새 정치문명으로 나아가려면 공존체제를 임시방편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미완성기의 지배 질서를 넘어 완성기의 자유민주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성숙기의 필수 질서이다. 자유와 평등, 권위와 민주, 시장과 계획, 남과 북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함께 설 수 있을 때 국가는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한다. K-Politics가 공존체제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존체제는 멈춤의 체제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체제이며, 분열된 시대가 성숙한 국가로 전환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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