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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본래 갈등을 다루는 기술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폭력 대신 제도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도록 만드는 장치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정치는 갈등을 관리하기는커녕 증폭시키는 장면을 반복한다. 정치는 조정자가 아니라 전투의 지휘관처럼 행동하고, 국회는 숙의의 장이 아니라 진영의 전초기지처럼 보인다. 왜 우리는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도는가.
한국 정치의 첫 번째 문제는 극단적 진영 대립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은 정책 노선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도덕적 우열을 가르는 표식이 되었다. 상대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된다. 타협은 배신이 되고, 중도는 기회주의로 오해받는다. 정치가 타협을 죄악시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엔진은 멈춘다.
두 번째 문제는 승자독식 구조다. 선거에서 이긴 쪽이 거의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제도 아래에서는 협력의 유인이 약하다. 다수는 독주하려 하고, 소수는 발목을 잡으려 한다. 제도는 경쟁을 전제로 설계되었지만, 조정을 장려하지는 못했다. 선거가 끝나면 통합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선거를 계속한다.
세 번째는 단기 성과 중심의 정치 문화다. 정치 일정은 다음 선거에 맞춰 돌아가고, 정책은 즉각적 체감 효과에 집착한다. 인구 구조의 변화, 지역 소멸, 연금과 재정 문제처럼 장기적 합의가 필요한 과제는 뒤로 밀린다. 정치가 짧은 호흡으로 움직일수록 사회의 미래는 불안정해진다.
네 번째는 시민과 정치의 거리다. 정당은 시민의 일상적 요구를 수렴하기보다 선거 동원 조직에 가까워졌다. 시민은 정책 토론의 참여자라기보다 지지자 혹은 반대자로 호명된다. 정치 혐오가 확산될수록 참여는 줄고, 참여가 줄수록 정치는 더 폐쇄적으로 변한다.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제도적 조정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선거제도와 국회 운영 방식에서 협치를 유도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다당제적 요소를 확대하거나, 상임위원회 중심의 숙의를 실질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현실과 미래를 위한 전반적인 법률정비가 필요하다. 갈등은 없앨 수 없지만, 제도 안에서 길들일 수는 있다.
둘째, 장기 의제에 대한 초당적 합의를 제도화해야 한다. 연금, 기후, 인구, 재정과 같은 문제는 정권의 이해를 넘어선 국가적 과제다. 임기와 무관하게 지속되는 특별위원회나 독립적 합의 기구를 통해 최소한의 공통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미래를 선거 전략에 맡길 수는 없다.
셋째, 정당의 구조를 개방해야 한다. 공천 과정의 투명성, 당원 참여 확대, 정책 중심 정당 운영이 필요하다. 팬덤 정치가 아니라 정책 경쟁이 이루어질 때 정치의 품격도 올라간다. 정당이 시민의 학교가 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학습된다.
넷째, 시민의 태도 역시 변해야 한다. 분노는 정치를 움직이는 연료가 될 수 있지만,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정책을 묻고, 데이터를 확인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시민이 늘어날 때 정치도 달라진다. 정치인은 시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냉정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깨끗해질 수 없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에 완전한 순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는 성숙해질 수 있다. 갈등을 인정하되 파괴로 가지 않게 하는 힘, 승리하되 독점하지 않는 절제, 패배하되 불복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이다.
한국 정치는 지금 시험대 위에 서 있다. 문제는 분명하다. 조정의 기술을 잃어버렸다는 것. 해법도 분명하다. 갈등을 제도화하고, 장기적 합의를 만들고, 시민과 정당을 다시 연결하는 것. 정치가 다시 기술로 돌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정치에 덜 실망하게 될 것이다. 정치의 수준은 결국 사회의 거울이다. 거울을 탓하기 전에, 우리는 어떤 얼굴로 그 앞에 서 있는지 돌아볼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