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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65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65
비 오는 날의 주막, 연암의 「하야연기(夏夜讌記)」를 읽다
“간 교수가 그랬잖아. 비 오는 날 주막에 앉아 막걸리 한잔 하자고.” 빗줄기를 뚫고 울린 벗의 전화 목소리에는 뭉근한 반가움이 배어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또 다른 벗이 불려 나왔다. 그렇게 나름 외고집 인생을 제법 살아낸, 사내 셋의 불쑥 맞닥뜨린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배경 삼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 보니 술은 어느새 맥주가 되고 다시 소주가 되었으며, 밤은 우리를 이끌 듯 자연스레 세 번째 술집까지 데려갔다. 어깨가 비에 젖는 줄도, 신발 끝이 축축해지는 줄도 모르고 빗속을 쏘다녔던 그 밤. 가슴속에 고여 있던 텁텁한 세상사 먼지들이 빗물과 넉넉한 술 한 잔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비가 그친 뒤 찾아온 한낮의 더위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푹푹 찐다. 선풍기 바람 아래 잠시 땀을 식히며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선생의 섭필(涉筆, 붓 가는 대로 쓴 글)인 「하야연기(夏夜讌記)」를 펼쳐 든다. ‘여름날 밤 잔치 기록’쯤으로 해석되는 그 나직한 제목을 따라가다 보니, 어젯밤 빗속을 떠돌던 우리들의 웃음소리와 취기 어린 발걸음이 책갈피 사이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 연암 역시 찌는 듯한 여름 밤, 후텁지근한 방구석을 떨치고 일어나 불쑥 벗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선생의 집으로 향하였다.
평생 우정을 숭고한 가치로 여겼던 연암 선생은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 첫머리에서 참된 친구의 모습을 이렇게 정의했다. “옛날에 붕우를 말하는 사람들은 붕우를 ‘제2의 나’라 일컫기도 했고, ‘주선인(周旋人,가만히 내 주변을 서성이는 이)’이라 일컫기도 했다. 한자를 만드는 자가 날개 우(羽) 자를 빌려 벗 붕(朋) 자를 만들고, 손 수(手) 자와 또 우(又) 자를 합쳐 벗 우(友) 자를 만들었으니, 붕우란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하야연기」 속 선생의 발걸음이 그토록 충동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웠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위에 지쳐 잠 못 이루던 밤, 선생이 문득 그리운 벗을 떠올리고 밤길을 나선 것은 결국 답답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 아니었을까. 선생이 살던 저 당시나 지금이나 세상은 보고 듣기에 불편한 일들이 다반사 아닌가.
선생도 그때 벗이 생각났으리라. 제2의 자아를 만나러 가는 길에 무슨 군더더기 같은 격식이나 계산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가슴속에 든 생각을 가감 없이 꺼내 보이고 마주 앉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매일같이 뉴스를 장식하는 복잡한 사건들, 시끄러운 정치와 서민의 어깨를 짓누르는 경제지표, 갈등과 대립의 언어들이 활자 조각이 되어 허공을 떠도는 세상이다. 그래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어지러운 소음 속에서 홀로 깨어 있는 밤은 외롭고 답답하다.
그럴 때 “간 교수가 그랬잖아”라며 건네오는 벗의 목소리는 일종의 구원이다. 나를 설명하거나 포장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속내를 온전히 내보일 수 있는 ‘또 다른 자아’들이 빗속에서 손을 내민 것이다. 벗이란 물질적 가치나 이해관계를 떠나,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 주는 참된 친구여야 한다. 비에 젖은 옷을 서로 털어주며 주막 구석자리에 앉아 찌그러진 양은 잔에 막걸리를 따르는 순간, 우리는 그 어떤 화려한 연회보다 풍요로운 영혼의 포만감을 느꼈다. 그렇게 이어진 술자리는 단순한 폭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팍팍한 세상을 버텨내기 위해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빗소리에 묻어둔 진심을 건네받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고 영악하게 흘러간다. 모든 관계에 계산기를 설치하고, 이해에 따라 사람이 분류된다. 이러한 시대에 불쑥 “막걸리나 하자”며 불러내고, 그 부름에 기꺼이 옷을 적시며 뛰어가는 벗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달빛 아래 벗의 문을 두드리던 선생의 그 설레는 손길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 마음속에 가슴속을 통째로 내보여도 좋을 ‘또 다른 자아’를 갈구하는 갈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그친 뒤 한낮의 열기가 대지를 달구고 매미 소리가 창밖을 가득 메우는 지금, 책장을 덮으니 어젯밤 벗들과 부딪쳤던 술잔의 맑은 울림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운 사건들의 연속이고 날씨는 연신 푹푹 찌지만, 가슴 한구석은 든든하기만 하다. 빗속을 함께 걸어주었던 나의 또 다른 자아들, 그 벗들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이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한 바람이 되어 마음속을 분주히 드나들기 때문이다. 벗이 그러했듯, 다음 비 오는 날에는 내가 먼저 수화기를 들고 다정하게 전화하리라. “이보게 벗들, 비도 오는데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함이 어떠한가.”

간호윤(簡鎬允): 문학박사.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순천향대학교(국어국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국어교육학과)을 거쳐 인하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하대 초빙교수이다.그는 1961년, 경기 화성, 물이 많아 이름한 ‘흥천(興泉)’생이다. 두메산골 예닐곱 먹은 그는 명심보감을 끼고 논둑을 걸어 큰할아버지께 갔다. 큰할아버지처럼 한자를 줄줄 읽는 꿈을 꾸었다. 12살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 꿈은 국어선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선생을 거쳐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최근작 : 『기부팔역시연구』,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1~3(2025), 『조선의 양심, 연암 박지원 소설집』,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 등 55여 권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