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최저임금의 한계와 방향

등록 :2026-07-17    조회수 149

정갑수

본문

 

8f8ce-6a5a07ed675a9-a5a3f9649f8e85b1860613268a95bde75a730cf2.jpg

시인/수필가 정갑수

 


시간당 최저임금의 한계와 방향

 


최저임금은 바닥이어야 했다. 더 내려갈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선, 사회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최소한의 윤리다. 그런데 2027년 한국의 최저임금, 시간당 10,700원은 그 의미를 바꾸고 있다. 이 숫자는 더 이상 ‘최저’에 머물지 않는다. 많은 일자리에서 그것은 출발선이 아니라 도착선, 곧 사실상의 기준임금으로 작동한다. 바닥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다수가 그 바닥에 머무는 풍경—그 조용한 역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 숫자가 탄생하는 과정은 제도적으로 정교해 보인다.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삼자 구조다. 매년 봄부터 이어지는 심의는 자료와 논쟁, 협상과 표결을 거친다. 그러나 결론은 대개 공익위원의 중재안에 수렴한다. 절차는 공정해 보이나, 산업·지역·생산성의 격차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는 여전하다.

 

국제 비교는 이 한계를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미국은 연방 최저임금 7.25달러라는 낮은 바닥 위에, 캘리포니아 16달러·뉴욕 15달러와 같은 지역별 기준을 얹는다. 독일은 약 12유로, 프랑스는 약 11.65유로, 영국은 약 11파운드 수준이다. 일본은 평균 약 1,000엔 내외로 한국보다 낮다. 절대 금액만 보면 한국은 중간권이다. 그러나 중위임금 대비 비율로 보면 한국은 60%에 근접한 상위권이다. 유럽은 이 높은 비율을 복지와 공공서비스로 지탱하지만, 한국은 임금 하나에 생존의 무게를 실어 나른다. 같은 숫자라도 삶의 온도는 다르게 식는다.

 

이 지점에서 모순이 생긴다.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삶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서울의 주거비는 세계적 수준이고, 자영업 비중은 높으며, 노동시장은 이중구조로 갈라져 있다. 그 결과 상당수 임금이 최저임금에 수렴한다. ‘최저’가 ‘중심’으로 이동하는 현상—이것이 한국 노동시장의 현재다.
각국은 이를 다른 방식으로 보완한다. 미국은 지역 차등과 근로장려세제(EITC)를 결합해 실질소득을 보전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단일 최저임금 위에 강력한 단체협약과 복지 체계를 덧씌운다. 일본은 지역별 차등으로 도쿄와 지방의 격차를 반영한다. 반면 한국은 단일 기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간명하지만, 현실을 단순화한다.

 

이제 정책의 방향은 분명해졌다. ‘세계 4강’과 ‘국민소득 5만 달러’를 목표로 내건 이재명 정부의 노동경제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높은 목표는 매혹적이다. 그러나 임금의 상승만으로는 그 문턱을 넘을 수 없다. 생산성과 산업구조,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전망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속도의 유혹이다. 임금을 빠르게 끌어올리면 단기적으로는 소득이 개선되지만, 생산성의 뒷받침이 없다면 비용 압박은 고용 축소와 자동화로 전이된다. 키오스크의 불빛이 늘어날수록, 사람의 자리는 줄어든다. 반대로 임금을 억누르면 내수는 식고, 불평등은 깊어진다. 어느 쪽도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설계에 있다.

 

따라서 해법은 단순한 인상이나 동결이 아니라 구조의 재편이다. 첫째,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을 도입하되, 생산성·물가·임대료를 반영한 세밀한 기준이 필요하다. 수도권과 지방, 고부가 산업과 저생산성 업종을 같은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둘째, 근로장려세제(EITC)와 사회보험 지원을 확대해 임금 외 소득을 보완해야 한다. 셋째, 자영업자의 임대료 구조와 플랫폼 수수료 문제를 개혁해 비용을 위에서 흡수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장기적으로는 기술혁신과 교육 투자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결국 ‘세계 4강’이라는 구호는 임금표의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회가 어떻게 비용을 나누고, 기회를 배분하며, 노동 약자를 보호하는지에 달려 있다. 국민소득 5만 달러는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2027년 시간당 최저임금 10,700원. 이 숫자는 진전이자 경고다. 우리는 바닥을 올렸지만, 그 바닥 위의 구조를 바꾸는 데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바닥이 기준이 되는 사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기준이 다시 기준답게 서기 위해, 이제는 숫자 너머의 인권과 공정 등 설계를 말해야 한다.
숫자는 차갑다. 그러나 정책은 따뜻해야 한다. 그 온도의 균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높은 숫자를 쥐고도 더 가벼워지지 못하는 시대를 오래 견디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