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철학으로 영주읽기 ④ | 봉서루, 봉황을 기다리는 도시 영주 - 안축이 봉서루에 남긴 인재의 철학 -

등록 :2026-07-07    조회수 391

최홍식(철학박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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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는 사람을 기다린다. 어떤 도시는 인재를 길러낸다. 영주는 오래전부터 봉황을 기다리는 도시였다.

조선의 비결서 『정감록』은 순흥을 천하제일승지(天下第一勝地)라 기록하고 있다. 풍수에서는 순흥 일대를 금계포란(金鷄抱卵), 곧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길지로 설명한다. 금계포란은 단순히 자손과 재물이 번성하는 땅을 뜻하지 않는다.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래를 바꿀 생명을 품고 있는 가능성의 상징이다.

 

이러한 염원을 담아서였을까. 소백산 정상이 올려다 보이는 영주시 순흥면 남쪽 넓은 들판에는 봉서루(鳳棲樓)가 자리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봉황이 깃드는 누각이다. 누각 뒤에는 아직 오지 않은 봉황을 우러러 맞이한다는 뜻의 앙봉루(仰鳳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앞마당에는 봉황의 알을 상징하는 알바위 더미가 수백 년 동안 깨어나지 않는 약속처럼 묵묵히 시간을 품고 있다.

 

봉황은 전설 속의 길조로, 태평성세와 성인의 출현을 상징한다. 봉서루는 봉황을 기다리는 누각이었지만, 그 봉황은 하늘에서 날아오는 상상의 새라기보다 시대를 이끌 인재를 향한 선조들의 염원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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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봉서루의 뜻을 가장 깊이 설명한 사람이 고려의 문신이자 명문장가 안축(安軸)이다. 안향의 후손인 그는 원나라 제과에 급제하여 이름을 떨쳤고,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을 남겨 경기체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가 남긴 「봉서루중영기(鳳棲樓重營記)」는 무너진 봉서루를 다시 세운 기록인 동시에, 선조들이 봉서루에 담아 두었던 철학을 오늘까지 전하는 글이다.

 

안축은 봉서루를 영남과 서울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사람들의 만남과 전별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설명한다. 또한 산과 강, 들과 길을 한눈에 품는 누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그는 아름다움은 풍경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크기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자의 "동산에 오르면 노나라가 작아 보이고,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아 보인다."는 말을 인용하며, 큰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큰 세상을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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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봉서루를 "산수의 아름다움만을 위한 누각이 아니라 농사에 힘쓰는 백성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즐거워하는 누각"이라고 기록했다. 절경을 감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신으로 백성과 함께 호흡하는 것, 그것이 봉서루가 품고자 했던 아름다움이었다.

 

큰마음은 자연을 바라보는 눈을 넘어 시대를 읽는 안목이 되고, 백성을 품는 마음을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책임으로 이어진다. 봉서루가 기다린 것은 바로 이러한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봉서루가 품고자 했던 이상은 영주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인재를 통해 구현되었다. 영주는 한때 시대를 먼저 읽고 새로운 문명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낡은 질서를 넘어 미래를 선택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는 인재들이 끊임없이 배출된 인재의 보고였다.

 

안향은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게 하며 새로운 학문의 시대를 열었고, 정도전은 성리학적 민본이념을 현실 정치로 구현하여 조선을 설계하였다. 금성대군과 순흥의 선비들은 시대의 불의 앞에서 목숨으로 정의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으로 이어져 조선을 이끌 인재를 길러내는 토대가 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능이 아니었다. 큰마음으로 시대를 먼저 읽었다는 점이었다. 봉황은 날개가 커서 하늘을 나는 새가 아니다.  시대를 먼저 읽는 안목,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공동체를 품는 책임이 모일 때 비로서 봉황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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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에 가려진 봉서루의 알바위는 오늘도 깨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태를 가능태(可能態)라고 했다. 가능성은 저절로 현실이 되지 않는다. 가능태는 기다림만으로 현실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과 끝까지 품고 길러내는 포란의 과정이 있을 때 비로소 현실태(現實態)가 된다.

 

금계포란이 말하는 것도 같은 철학이다. 알은 품을 때 생명이 되고, 인재는 길러질 때 시대를 바꾸며, 도시는 큰마음을 품을 때 미래를 얻는다.

 

알은 스스로 깨지지 않는다. 누군가 품을 때 생명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재능은 기다림만으로 꽃피지 않는다. 믿고 길러주는 손길이 있을 때 비로소 시대를 바꾸는 인재가 된다.

그래서 봉황은 기다림 끝에 오는 것이 아니다. 큰마음을 품은 도시에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