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강철의 발명과 초고층 마천루 총괄본부장 칼럼

등록 :2026-06-19    조회수 150

정갑수

본문

b41a2-6a38cdd644c50-9764f8b22764c03ba506b0a748530dde68030720.jpg

 

강철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중력을 협상하는 방식의 전환점이다. 돌과 벽돌로 쌓아 올리던 시대, 건물은 땅에 순응하며 넓어졌고, 하늘을 향한 욕망은 늘 두께로 보상받았다. 높이 오르려면 벽은 두꺼워져야 했고, 결국 건물은 스스로의 무게에 눌려 더 이상 위로 나아가지 못했다. 인간의 야망은 늘 있었으되, 재료가 그것을 배반했던 셈이다.

그러나 1855년 영국의. 엔지니어, 헨리 베세머(Henry Bessemer)가 베서머 공법으로 대량생산된 강철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뒤집히고, 성분이 불안정한 강철을  영국의 야금학자, 로버트 무세트(Robert Mushet)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가볍고 강한 강철이 대량 생산되어 톤 당 80 달러가 넘는 생산 비용이 32달러로 떨어졌다. 압축뿐 아니라 인장에도 견디는 이 물질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맞아 7,300톤의 연철이 들어간 높이 300 미터의 에펄탑을 세워 건축의 논리를 바꾸어 놓았다.

국제초고층도시건축학회는 높이 300 미터 이상을 초고층 빌당. 600 미터 이상믈 극초고층으로 분리한다. 이제 건물은 더 이상 ‘쌓는’ 대상이 아니라 ‘세우는’ 구조가 되었다. 외벽은 하중을 떠맡는 주체에서 해방되고, 철골 골격이 건물의 뼈대를 이루며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간다. 마치 인간이 비로소 자신의 척추를 새로 발명한 것처럼.
초고층 빌딩은 그렇게 태어났다.

시카고의 홈 인슈어런스 빌딩에서 시작된 철골 구조는 뉴욕의 마천루로 이어졌고, 서울의 63빌딩.인천송도국제도시의 포스코타워. 서울의 555미터 높이의 롯데월드타워, 두바이의 828 미터 높이의 부르즈할리파에 이르러 그 정점을 찍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건설중인 높이 1.000 미터의 극초고층건물이 최고자리를 차지 하려고 하고 있다.

높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기술과 자본, 그리고 도시의 욕망이 교차하는 좌표가 되었다.
1857년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인,엘리샤 오티스( Elisha Otis)가 뉴욕의 한 백화점에 안전장치가 있는 승객용 승강기를 쳐초로 설치한, 엘리베이터의 발명과 결합된 강철 구조는, 수직적 도시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했다.

인간은 더 이상 땅 위에서만 경쟁하지 않는다. 지금도 인천송도국제도시에서는 초고층빌딩 건설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같은 주소 안에서 층으로 서열이 나뉘는 시대다. 참으로 기묘하고도 조금은 웃픈 풍경이다. 같은 건물인데, 넓이와  높이에 따라, 3층과 타워팰리스층의 ‘세계관’이 다르다니.
그러나 강철과 마천루의 서사는 단순한 진보의 찬가로 끝나지 않는다. 초고층 건물은 막대한 자원을 소비하고, 도시의 바람길과 일조권을 재편하며, 때로는 권력과 불평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유리와 강철로 빛나는 외관 뒤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물, 그리고 노동의 층위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늘로 솟아오른 만큼, 그 그림자 또한 길어지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계속해서 위를 바라본다. 강철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초고강도 합금, 탄소섬유와의 결합, 그리고 친환경 생산 공정까지. 미래의 마천루는 단지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가볍고, 더 적게 소비하며, 더 지혜롭게 서게 될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높이’가 아니라 자연과 도시와의 ‘조화’가 건축의 새로운 척도가 될지도 모른다.


강철은 인간에게 하늘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그 하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너무 높이 올라가다 보면, 발밑의 땅을 잊기 쉽다. 그러니 가끔은 내려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높이 올라갈 것인지가 아니라, 왜 올라가려 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