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토)

정치는 왜 우리를 실망시키는가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정치, 분노를 중계하는 정치

등록 :2026-02-05    조회수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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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1a2-6984551461ad1-bf96d57dfaeecd6ec6e187ca66099d530fdadc74.jpg            ♦ 정갑수 수필가.인천 시민교수

 

 

정치만큼 오해받는 단어도 드물다. 사람들은 정치를 권모술수, 말싸움, 이전투구로 기억한다. 선거철이 되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가, 투표함이 닫히면 다시 일상 밖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정치는 더럽다”는 말은 경험에서 나온 진술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말이 널리 통용될수록, 우리는 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친다. 정치가 더럽게 보일 때, 그것은 정치가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정치공학적인 정당의 이합집산과 오로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되고자 하는 피선거권자들을 유권자들이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정치의 출발점은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는 공동체가 잘 살기 위한 기술이었다. 정치는 갈등을 제거하는 장치가 아니라, 갈등을 제어하고 조정하는 지혜였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폭력이 아니라 말과 제도를 통해 공존하도록 만드는 장치, 그것이 정치였다. 근대 이후 막스 베버는 정치를 권력의 획득과 유지로 정의했지만, 그 역시 정치가 무력과 폭력의 독점을 제도 속에 가두는 행위임을 강조했다. 요컨대 정치는 싸움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싸우되 사회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기술이다.

 

문제는 한국 정치가 이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하겠다. 정치가 ‘조정의 기술’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갈등은 언제나 존재한다. 문제는 갈등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능력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타협이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배신의 증거가 되었다. 중간지대는 사라지고, 극단만이 목소리를 얻는다. 정책의 우열을 따지기보다 정체성의 진영을 가른다.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누구 편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그 결과 정치는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분노의 중계자가 되었다. 분노는 즉각적이지만, 해결은 더디다. 정치가 분노를 조정하지 못할 때, 분노는 정치의 연료가 된다. 선거는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제거하는 전투로 변한다. 다음 세대의 삶을 묻는 질문은 사라지고, 다음 선거의 유불리만 남는다. 정치가 짧아질수록 사회의 시간도 함께 쪼그라든다.

 

이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압축 성장 속에서 민주주의는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지만, 1987년 정치제도는 승자독식 구조는 타협을 손해로 만들었고, 시민은 정치의 주체라기보다 관객이 되었다. 정치인은 시민을 과소평가하고, 시민은 정치인을 과대평가한다. 그래서 실망은 반복되고, 혐오는 축적된다. 정치를 혐오하는 순간, 정치는 더 무책임해진다. 비어 있는 자리는 언제나 극단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회복은 영웅의 등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조정자다. 팬덤의 대표가 아니라 공동체의 관리자, 즉각적인 박수보다 장기적인 안정에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제도 역시 단기 성과를 부추기기보다 숙의와 조정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시민 또한 분노의 소비자가 아니라 판단의 주체로 돌아와야 한다. 정치가 더럽다고 말하는 대신, 무엇이 더러워졌는지 정확히 요구해야 한다.


정치는 완벽해질 수 없다. 그러나 방치되면 반드시 타락한다. 정치가 불편할수록, 그것은 우리 삶에 가까이 있다는 증거다. 정치의 실패는 언제나 시민의 일상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그래서 정치가 멀어져서는 안 된다. 불편할 만큼, 성가실 만큼,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정치는 결국 기술이다. 그리고 기술은 연습하고 갈고닦지 않으면 녹이 슨다.
정치지도자의 수준이 그  나라 국인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하는 말을 곰곰이 상기해야 할 때이다.

 

정갑수 약력
수필가
인천 시민교수
인천바둑연합회장
전, 환경부 장관정책보좌관
전, 예원예술대학교 객원교수
전. 인천미추홀구시설관리공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