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토)

[연재|K-Politics ] ⑱ 양비론과 양미론은 어떻게 다른가? — ‘둘 다 틀림’에서 ‘둘 다 미완’으로의 전환 —

등록 :2026-08-14    조회수 345

『K-Politics』의 저자 권추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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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어느 한쪽 편에 서기를 요구받는다. 보수냐 진보냐, 자유냐 평등이냐, 시장이냐 계획이냐, 남이냐 북이냐를 선택하라는 압박이 커진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국가와 사회의 복잡한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때 많은 사람은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兩非論)을 선택한다. 양비론은 대립하는 양쪽을 향해 “둘 다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 새로운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

 

양비론은 일정한 의미를 갖는다. 어느 한쪽의 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진영정치의 오만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진영과 체제가 자기만 완전하다고 주장할 때 정치는 쉽게 독선으로 흐른다. 양비론은 이런 독선을 비판하고, 양쪽 모두에게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양비론의 한계도 분명하다. 양쪽을 모두 부정하는 데 머물면 책임 있는 대안을 만들기 어렵다. 비판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비판만으로는 국가의 길을 세울 수 없다.

 

양비론이 오래 지속되면 냉소로 흐르기 쉽다. “정치는 다 똑같다”, “보수도 틀렸고 진보도 틀렸다”, “남도 문제고 북도 문제다”라는 말은 처음에는 균형 있는 비판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다음 질문이 없다면 그것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지 못한다. 모두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새롭게 세울 것인가는 더 어려운 문제이다. 부정은 문제를 드러내지만, 부정만으로는 사회를 설계할 수 없다.

 

K-Politics가 주목하는 것은 양미론(兩未論)이다. 양미론은 “둘 다 틀렸다”가 아니라 “둘 다 아직 미완이다”라고 본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 틀렸다고 보면 상대를 버리게 되지만, 미완이라고 보면 상대가 가진 의미와 가능성을 다시 보게 된다. 미완은 결함이면서 동시에 성장의 여지이다. 양미론은 서로 다른 가치와 체제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부분적 진실을 더 높은 질서로 이끌어내려는 사유이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도 미완이고 평등주의도 미완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창의성을 살리지만 공동체적 책임을 놓칠 수 있고, 평등주의는 사회적 정의를 강조하지만 개인의 자율과 차이를 억누를 수 있다. 양비론은 여기서 “둘 다 문제다”라고 말하고 멈출 수 있다. 그러나 양미론은 자유가 가진 생명력과 평등이 가진 정의를 함께 살리는 길을 찾는다. 그 길이 공존주의이다. 둘 다 미완이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미완이기 때문에 더 높은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는 생산력과 창의를 키웠지만 양극화의 문제를 남겼고, 사회주의는 공동체적 분배를 말했지만 권력집중과 비효율을 드러냈다. 시장경제는 활력을 만들지만 방치되면 불안정을 키우고, 계획경제는 공공성을 세우지만 과도하면 통제로 흐를 수 있다. 양미론은 이 둘을 단순히 부정하지 않는다. 각자의 장점과 한계를 읽고, 공생주의와 공영경제(共營經濟, Co-nomics)의 질서 안에서 다시 배치하려 한다.

 

권위와 민주, 남과 북의 문제에서도 양미론은 중요하다. 권위는 질서와 장기적 책임을 가질 수 있지만 독점되면 억압이 되고,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을 세우지만 성숙한 책임 구조가 없으면 진영정치와 단기 여론에 흔들릴 수 있다. 남쪽도 완전하지 않고 북쪽도 완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나 제거가 아니다. 권위주의 또는 군주주의의 지속적 책임성과 민주주의의 국민주권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 가치관 아래 조화시키는 공민주의, 남과 북을 공존의 과정 속에서 통일국가로 이끄는 공존체제의 사유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새 정치문명으로 나아가려면 양비론적 부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양비론은 낡은 독선을 깨뜨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미래를 세우는 완성된 사유는 아니다. 필요한 것은 양쪽의 미완성을 인정하고, 그 미완 속에 담긴 부분적 진실을 중립(重立)·중첩(重疊)·중화(重和)의 과정을 통해 더 높은 조화로 이끄는 양미론의 정치철학이다. ‘둘 다 틀림’에서 ‘둘 다 미완’으로 사유가 전환될 때, 대립은 제거의 전쟁이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공존체제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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