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여보게, 어머니가 아니라 환자일세!

등록 :2026-08-07    조회수 133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

본문

 

“거 말이 되네.” 루멘전광 대표가 온누리 병원장의 말을 듣더니 무릎을 친다. 나 역시 무엇인가로 머리를 세차게 맞은 듯했다. 우리 셋은 태어난 곳도 성장한 곳도 직업도 다르지만 나이가 같고 한 길만을 고집해서인지 죽이 잘 맞는다. 엊그제 온누리병원장이 소주나 한 잔 하자며 나와 벗을 불러낸 자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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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전해지는 한 우언이 있다. 들판에서 호랑이와 염소가 풀을 보며 다투었다. 호랑이는 “풀이 푸르다”고 했고, 염소는 “아니다. 풀은 검다”고 끝까지 우겼다. 둘은 동물의 나라 왕인 사자에게 판결을 받으러 갔다. 사자는 염소가 아니라 호랑이를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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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풀이 푸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잖은가. 그런데도 어찌 그런 상대와 끝까지 다투었는가. 잘못은 풀의 색깔이 아니라 자네의 그 이기려는 ‘고집’일세. 그 고집이 이 조용한 동물 나라를 시끄럽게 한 거야. 그러니 자네가 귀양가시게”라고. 우언은 말한다. 사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의 ‘고정된 생각’이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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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이를 성심(成心)이라 했다. “부수기성심이사지, 수독차무사호(夫隨其成心而師之 誰獨且無師乎)”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굳어진 생각’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성심은 곧 이 굳어진 생각이다. 한 번 굳어진 생각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이 말을 엊그제처럼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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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스무 해가 넘도록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범, 나 머리가 너무 아퍼.” 어느 날은 머리였고, 어느 날은 허리였으며, 또 어느 날은 다리였다. 병원도 적잖이 다녔다. 동네 의원에서부터 큰 병원까지 수없이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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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시골 큰집을 혼자 지키며 살아오신 세월이 병이 되었겠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힘든 것은 어머니보다 나였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범, 나 너무 아프네.” 그 한마디만 들어도 숨이 막혔다. 아프시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 수 없었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상급병원 진료 의뢰서조차 써주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니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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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 나는 병원장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 밖에 없었다. 친구의 온누리병원은 중견급 병원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와 입원을 시켜드렸다. 술자리는 나에게 어머니 입원에 대한 위로 차원이었다. 어머니 입원하신 날, 루멘전광 대표도 아내의 다리 골절 때문에 병원에서 만난 것도 작용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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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도대체 어디가 아프시다는 건지 모르겠네. 검사 결과도 이상이 없다며….” 가만 내 말을 듣던 친구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여보게. 자네는 자꾸 어머니를 보고 있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다. 친구는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가 아니라 환자일세. 환자로 어머니를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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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한마디가 스무 해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내 마음을 열어 버렸다. 나는 아들로서 어머니를 돌본다고 생각했지만, 환자를 이해하려 하지는 않았다. ‘내 어머니니까 괜찮겠지.’, ‘연세가 드셔서 그러시겠지.’ 하는 생각, 즉 내 생각으로 어머니 병을 읽은 것이지, 어머니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환자라는 생각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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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말한 ‘성심’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환자를 본 것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이름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를 환자로 바라보라는 친구의 말은, 어머니를 덜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오래,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 준 말이었다. 사람은 가까울수록 제대로 보지 못한다. 사랑이 깊을수록 고정된 생각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래서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보다 환자라는 이름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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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술자리는 또 하나의 선물을 남겼다. 바로 벗이었다. 의사 친구는 의술보다 먼저 사람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함께한 벗은 “거, 말이 되네.”라는 짧은 감탄으로 그 깨달음을 더욱 깊게 새겨 주었다. 어려운 순간일수록 친구는 먼저 곁을 내어준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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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날 내 스승은 흰 가운을 입은 친구였고, 말없이 술잔을 기울여 준 또 다른 벗이었다. 의사 친구가 건넨 한마디는 진료실에서 끝난 의학의 언어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오래 사랑하는 법을 일깨워 준, 내 인생의 가장 따뜻한 처방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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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박사/인하대초빙교수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