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K-Politics ] ⑨정치적 적대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 마음의 분단과 통합의 정치적 원리 —
등록 :2026-07-15 조회수 483
『K-Politics』의 저자 권추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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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은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 안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분단선이 있다. 그것은 지역과 세대, 이념과 계층, 정당과 진영 사이에 그어져 있고, 더 깊게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정치적 적대는 바로 이 마음의 분단에서 시작된다. 상대를 다른 의견을 가진 국민으로 보지 않고, 함께할 수 없는 적으로 보는 순간 정치는 대화의 장이 아니라 공격의 장으로 변한다.
정치적 적대는 단순한 의견 차이에서 생기지 않는다. 의견 차이는 민주사회에 언제나 존재한다. 문제는 차이를 존재의 부정으로 바꾸는 마음의 구조이다. 정책이 다르면 토론하면 되지만,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자기 진영을 선으로 확신하는 순간, 정치적 판단은 사라지고 도덕적 전쟁만 남는다. 이때 정치는 국가의 문제를 함께 푸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굴복시켜야만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심리적 전투가 된다.
정치가 이 마음의 분단을 이용할 때 적대는 더욱 깊어진다. 진영정치는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모아 상대편을 향하게 만든다. 국민은 스스로 판단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진영 감정에 동원되는 집단이 되고, 정치인은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분노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얻는다. 적대는 정치의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때로 정치의 연료가 된다. 그래서 적대를 먹고 자라는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계속 필요로 한다.
K-Politics는 이 구조를 넘어서는 통합의 정치 원리를 요구한다. 국민통합은 단순히 화해하자는 감성적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분단을 직시하고, 서로 다른 삶과 가치가 왜 갈라졌는지 살피며, 그 차이를 공존의 질서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통합은 적대를 덮는 일이 아니라 적대가 생겨난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마음의 분단을 그대로 둔 채 제도만 고치면 갈등은 다른 이름으로 다시 반복된다.
양비론(兩非論)은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다.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태도는 겉으로는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자칫하면 책임 있는 대안 없이 모두를 부정하는 냉소로 흐를 수 있다. 양비론은 싸우는 양쪽을 향해 “둘 다 틀렸다”고 말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없다. 적대를 넘어서려면 부정이 아니라 재구성이 필요하다.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더 높은 공익의 질서 안에서 다시 배치해야 한다.
K-Politics가 제시하는 양미론(兩未論)은 이 점에서 중요하다. 양미론은 상대를 틀린 존재가 아니라 아직 미완인 존재로 본다. 미완이라는 인식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판단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가능성을 여는 판단이다. 상대가 완전히 악하다고 보는 순간 통합은 불가능하지만, 상대도 부족한 존재라고 보면 대화와 조정의 길이 열린다. 정치적 적대는 상대의 미완성을 증오할 때 커지고, 서로의 미완성을 함께 성숙의 과제로 받아들일 때 약해진다.
정치적 적대를 넘어서는 통합의 원리는 중립(重立)·중첩(重疊)·중화(重和)의 사유와 연결된다. 중립은 어느 편도 선택하지 않는 무색의 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를 함께 세우는 일이다. 중첩은 대립하는 경험과 요구를 겹쳐 보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읽는 일이다. 중화는 그 차이를 더 높은 조화의 질서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정치의 언어도 이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상대를 적으로 부르면 국민도 상대 국민을 적으로 보기 쉽고, 정당이 분노를 동원하면 사회는 분노를 학습한다.
대한민국 정치가 새 정치문명으로 나아가려면 휴전선 바깥의 분단만이 아니라 마음속 분단도 넘어서야 한다. 상대를 적으로 보는 정치는 잠시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지만 국가를 성숙시키지는 못한다. 필요한 것은 상대를 없애는 승리가 아니라, 서로의 미완성을 인정하고 공존의 질서로 나아가는 통합의 정치이다. 마음의 분단이 치유될 때 국민통합이 가능하고, 국민통합이 가능할 때 남북의 공존통일도 현실의 길이 된다. K-Politics가 말하는 새 정치문명은 바로 이 마음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