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K-Politics ] [제24편] 대통령제의 한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 제왕적 대통령제를 넘어서는 국가운영 원리 —
등록 :2026-09-03 조회수 375
『K-Politics』의 저자 권추호 박사
본문

대통령제의 문제는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대통령을 뽑아 놓고 때로는 왕을 기대한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모든 책임을 떠안기며, 실패하면 다시 한 사람을 갈아치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는 한 사람의 의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교육, 경제, 복지, 외교, 안보, 통일은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제의 한계는 대통령 개인의 능력 부족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모든 기대와 권한과 책임을 한 자리에 몰아넣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제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국민이 직접 최고 지도자를 선택함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이 분명해지고, 위기 상황에서 빠른 결단과 책임 있는 집행이 가능하다. 분열된 정당정치 속에서도 대통령은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장점이 지나치게 커지면 곧바로 위험이 된다. 강한 리더십은 쉽게 권력집중으로 변하고, 분명한 책임은 모든 책임을 한 사람에게 몰아넣는 구조로 바뀐다. 대통령제가 건강하려면 강한 권한만큼 강한 견제와 분산된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
한국정치에서 대통령제는 자주 제왕적 대통령제로 변해 왔다. 대통령이 국정의 중심이 되는 것을 넘어, 정당과 관료, 국회와 정책까지 대통령의 의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반복되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정책의 방향이 되고,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권력의 중심이 되며, 여당은 국가정당보다 대통령의 방어조직처럼 움직이기 쉽다. 그러면 국가는 제도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둘러싼 힘의 배열로 움직인다. 이것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본질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승자독식 구조와 결합할 때 더 위험해진다. 대선에서 이긴 쪽은 국가 전체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진 쪽은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낀다. 선거가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국가권력 전체를 차지하는 전쟁이 된다. 이 구조에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흔들리고, 인사가 흔들리고, 국가의 장기 방향까지 흔들린다.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의 장치이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의 뼈대가 흔들린다면 그것은 성숙한 국가운영이 아니다.
대통령제의 또 다른 한계는 단기성과의 압박이다. 대통령은 제한된 임기 안에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제도 임기 안의 성과로 포장되기 쉽다. 교육개혁은 몇 년 만에 완성되지 않고, 연금개혁은 한 정권의 인기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통일준비는 한 대통령의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 중심의 정치에서는 국가의 긴 시간이 정권의 짧은 시간에 끌려 들어간다. 국가의 시계가 선거의 시계에 맞추어질 때, 미래는 자꾸 뒤로 밀린다.
그렇다고 대통령제를 단순히 없애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제도는 언제나 그 제도를 움직이는 가치관과 함께 보아야 한다. 대통령제가 문제라기보다 대통령제를 제왕적으로 만드는 정치문화와 권력구조가 문제이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과도한 구원을 기대하고, 정당은 대통령의 인기에 기대며, 국회는 대통령과의 대결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떤 제도를 가져와도 다시 한 사람에게 권력과 분노가 집중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제도 변경 이전에 국가운영 원리의 전환이다.
K-Politics가 요구하는 방향은 권력의 집중이 아니라 책임의 입체화이다. 국가는 대통령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통일과 외교, 국방처럼 장기적 국가전략이 필요한 영역이 있고, 경제와 행정, 민생처럼 일상적 책임운영이 필요한 영역이 있으며, 국민통합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 가치관의 방향처럼 정치권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도 있다. 권력은 하나로 모일수록 강해 보이지만, 책임은 역할에 맞게 나뉠 때 더 깊어진다. 좋은 국가운영은 권한을 키우는 데 있지 않고, 권한과 책임이 있어야 할 자리를 바로 잡는 데 있다.
대한민국 정치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넘어서려면 대통령을 왕으로 만들지도, 모든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지도 말아야 한다. 대통령은 필요하지만 대통령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도자의 결단도 필요하지만 제도의 책임분담이 함께 있어야 한다. 정권의 추진력도 필요하지만 국가의 장기 방향이 더 깊게 서 있어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한 사람에게 기대고 한 사람에게 분노하는 정치를 넘어, 국가 전체가 책임을 나누는 정치로 가야 한다. 대통령제의 한계를 직시하는 일은 대통령을 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국가를 더 강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