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첫사랑은 상처인가, 별인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과 알퐁스 도데의 『별』-

등록 :2026-09-17    조회수 82

정갑수

본문

첫사랑은 이상한 기억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은 흐릿해지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왜 그럴까. 첫사랑은 단순히 누군가를 처음 사랑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인을 통해 자기 안에서 처음 깨어난 감정을 만나는 사건이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과 알퐁스 도데의 「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첫사랑을 그린다. 그러나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랑의 경험은 주인공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두 작품은 묻는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인가, 아니면 경험하는 것인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 열여섯 살 블라지미르는 이웃집의 아름다운 지나이다에게 한순간에 매혹된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기보다 먼저 그녀에게 사로잡힌다. 지나이다는 소년에게 현실의 한 여인이 아니라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상이다.



첫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상대방은 실제 인간이 아니다. 내가 보고 싶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래서 첫사랑에는 사랑과 함께 환상이 따라온다.
그러나 현실은 환상을 오래 내버려두지 않는다.



블라지미르는 지나이다에게 여러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급기야 자신의 아버지와 그녀의 관계까지 목격한다. 소년이 경험한 충격은 단순한 실연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경험이다.



그 순간 블라지미르는 처음으로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도 내가 원하는 대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첫사랑은 행복한 추억인 동시에 상처다. 하지만 바로 그 상처가 그를 성장시킨다. 사랑에는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질투와 욕망, 소유욕과 배신, 환상과 현실의 간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그래서 낭만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소년이 인간의 복잡성을 처음 발견하는 성장소설이다.



도데의 「별」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프로방스의 산에서 살아가는 목동에게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별처럼 빛나는 존재다. 어느 날 폭우 때문에 그녀가 산속에 머물게 되면서 두 사람은 단둘이 밤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목동은 욕망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별」의 사랑은 『첫사랑』과 갈라진다. 블라지미르에게 사랑은 상대방을 향해 달려가는 감정이라면, 목동에게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멈추는 힘이다.



그래서 「별」의 사랑은 침묵한다. 가까이 있지만 함부로 다가가지 않는다. 사랑하지만 요구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방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다.



그 밤, 목동에게 스테파네트는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가 된다.
도데가 보여주는 사랑의 순수성은 바로 이것이다.



사랑은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지켜주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첫사랑의 두 얼굴이 보인다.



투르게네프의 블라지미르는 욕망 때문에 상처받는다.
도데의 목동은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사랑을 지킨다.
한 사람의 사랑은 상처가 되고, 다른 사람의 사랑은 별이 된다.



그러나 두 사랑이 모두 순수한 이유는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했던 순간의 진정성에 있다.



우리는 흔히 첫사랑을 ‘가장 순수했던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첫사랑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순수한 것은 아니다. 질투도 있었고, 집착도 있었으며, 상대방을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기도 했다. 오히려 첫사랑은 미숙하기 때문에 순수하다.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계산하는 법도 몰랐고, 상처받지 않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 온 마음을 던졌다.



오늘날의 사랑은 어떤가.
우리는 사랑하기 전에 조건을 살핀다. 경제력, 직업, 학력, 외모, 성격, 가족관계까지 비교한다. 연애도 때로는 시장처럼 움직인다. 더 나은 조건의 상대가 나타나면 관계를 재평가하고, 감정의 불편함이 커지면 관계를 종료한다.



물론 현실적인 판단은 필요하다. 사랑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에서 지나친 계산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것이 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첫사랑의 진짜 가치는 어쩌면 여기에 있다.
첫사랑은 우리에게 사랑받는 법보다 먼저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질투하고, 상처받고, 때로는 보내주는 법을 배우게 한다.



블라지미르는 사랑을 잃고 인간을 배웠다. 목동은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 사랑의 아름다움을 지켰다.



둘 중 어느 사랑이 더 위대한가를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인간의 사랑에는 두 모습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욕망이 있고 절제가 있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놓아주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환상이 있고 현실이 있다.



그래서 첫사랑은 우리에게 사랑의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강하고 복잡하며 아름답고 잔인한 것인지를 처음 보여준다.



세월이 흐른 뒤 우리는 첫사랑을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만나더라도 예전의 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때의 나도 이미 없다.



그런데도 첫사랑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했던 젊은 날의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첫사랑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투르게네프에게 첫사랑은 상처를 통해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였고, 도데에게 그것은 욕망을 넘어 별처럼 남는 순수한 기억이었다.


하나는 상처로 남고, 하나는 별로 남는다.



그러나 문학이 오래 기억하는 첫사랑은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사랑은 사람을 얻는 일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사랑하는 인간이 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b41a2-6aab54f5a99d6-2a007aa35d8bbcd311f7c44fa2d4f6add9c2eb33.jpg
수필가,칼럼니스트 정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