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편] 승자독식 구조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 협치와 공존정치의 제도화 원리 —
등록 :2026-09-01 조회수 436
『K-Politics』의 저자 권추호 박사
본문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고, 잘못된 권력을 심판하며, 새로운 정부를 선택한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국가 전체를 독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목적은 승자를 만드는 데 있지 않고, 국민 전체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운영하는 데 있다. 그런데 정치가 선거 승리만을 권력행사의 근거로 삼을 때, 민주주의는 쉽게 승자독식의 구조로 흐른다.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선거가 끝나도 정치적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이긴 쪽은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모든 국정을 자기 방식대로 밀어붙이려 하고, 진 쪽은 권력을 빼앗겼다는 위기감 속에서 전면 반대에 나선다. 집권세력은 집행의 책임을 독주로 착각하고, 반대세력은 견제의 책임을 거부로 착각한다. 그러면 국회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전선이 되고, 정책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진영의 깃발이 된다. 국민은 선거 이후에도 계속 갈라진 상태로 남는다.
승자독식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 장기 과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교육개혁, 연금개혁, 복지개혁, 지역균형, 산업전환, 남북통일 같은 문제는 어느 한 정권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긴 시간과 사회적 합의, 제도적 지속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책이 부정되고, 다음 정부는 다시 새로운 이름으로 같은 문제를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방향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협치는 이러한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기본 원리이다. 그러나 협치는 단순히 여야가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이 아니다. 협치는 권력을 나누어 책임을 함께 지는 국가운영 방식이다. 집권세력은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모든 것을 독점하지 않고, 반대세력은 선거에서 졌다고 해서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국가 과제에 대해서는 경쟁하되, 국가의 기본 방향과 국민의 삶에 대해서는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협치는 약한 정치가 아니라 성숙한 정치이다.
공존정치는 협치보다 더 깊은 원리를 요구한다. 협치가 정치세력 간의 운영 방식이라면, 공존정치는 서로 다른 가치와 세력이 왜 함께 존재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철학이다. 다수와 소수, 집권과 견제, 중앙과 지방은 모두 국가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가진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사라져야 좋은 정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미완성을 인정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 가치관 아래 더 높은 공익의 질서로 역할을 나눌 때 정치적 경쟁은 파괴가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 된다.
이 원리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협치는 언제든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정치인이 마음만 먹으면 협치가 이루어지고, 마음이 바뀌면 다시 대립으로 돌아가는 구조라면 국가는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예산, 인사, 입법, 국정계획, 통일정책 같은 핵심 영역에서 다양한 정치세력과 사회세력이 책임 있게 참여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공존정치는 좋은 말이 아니라 국가운영의 규칙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권력의 일방적 독점도 막고, 무책임한 반대도 줄일 수 있다.
양미론(兩未論)의 관점에서 보면 승자도 미완이고 패자도 미완이다. 선거에서 이긴 세력이 모든 답을 가진 것은 아니며, 선거에서 진 세력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승자는 국민의 선택을 받았지만 독선에 빠질 수 있고, 패자는 견제의 역할을 갖지만 반대에만 머물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승자의 권한과 패자의 역할을 함께 제도화해야 한다. 이것이 중립(重立)·중첩(重疊)·중화(重和)의 정치적 적용이다. 서로 다른 정치세력을 함께 세우고, 그 역할을 겹쳐 보며, 더 높은 국가 책임으로 조화시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새 단계로 나아가려면 승자독식의 습관을 넘어야 한다. 선거는 필요하지만 선거의 승리가 국가 전체의 독점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권력을 차지한 쪽의 일방적 통치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미래를 함께 책임지는 공존의 국가운영이다. K-Politics가 말하는 협치와 공존정치는 정치적 예의가 아니라 통일국가를 준비하는 제도적 훈련이다. 남쪽 내부에서 승자와 패자가 함께 국가를 운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남북의 공존통일도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 대한민국은 승자독식의 정치를 넘어 책임을 나누는 공존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