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영주 금성대군신단 춘향사 봉행…충절의 역사 다시 세우다 단종 복위의 역사적 현장 순흥, 제례를 넘어 공동체 기억과 가치 재확인

등록 :2026-04-03    조회수 287

대구경북취재본부장 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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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는 지난 3일 금성대군신단에서 ‘금성대군신단 춘향사’를 봉행하고, 조선 전기 격변 속에서 드러난 충절의 의미를 되짚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춘향사는 지역 유림과 시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됐다.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금성대군의 행적을 기리는 의례이자, 역사적 선택과 가치에 대한 성찰의 장으로 의미를 더했다.

 

금성대군 사건은 세조의 즉위 과정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충절의 사례로 평가된다. 어린 단종이 폐위되는 정치적 격변 속에서 금성대군은 순흥을 거점으로 복위 거사를 추진하다 생을 마감했다. 이는 단순한 왕위 다툼이 아닌, 정통성과 의리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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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신단 옆 은행나무는 수령 약 1,100년, 높이 약 30m에 이르는 노거수로, 금성대군의 충절과 함께 전해지는 상징적 존재다.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금성대군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도 이 나무는 자리를 지켜왔으며, 순흥 지역의 격변을 함께 겪은 ‘산 역사’로 평가된다. 특히 한때 고사된 듯 보였다가 다시 새 가지를 틔운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금성대군의 절의와 선비정신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왕과 사는 남자 등 역사 콘텐츠를 통해 왕권과 충절을 둘러싼 서사가 재조명되면서, 순흥을 중심으로 한 금성대군의 행적 역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지역은 사건의 배경을 넘어 ‘기억의 장소’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이날 제례는 전통 의식에 따라 초헌관·아헌관·종헌관의 헌작과 분향, 축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선현의 충의를 기리고, 권력과 도리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는 역사적 질문을 되새겼다.

 

금성대군신단의 제향은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통 유지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역사적 뿌리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한득 공보실장은 금성대군신단 일원 정비사업에 대해 설명하며, “금성대군의 충절이 깃든 이 공간이 지역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자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며 “관람객들의 많은 관심과 방문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번 춘향사는 과거를 기리는 의례를 넘어, 오늘의 지역사회가 어떤 가치를 계승할 것인가를 묻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충절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을지, 순흥의 제례는 여전히 그 답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