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서석지 조성 연대는 1645년…주일재 상량문서 확인 기존 ‘1613년 조성설’ 바로잡을 기록 발견…세계유산 등재 추진에도 탄력
등록 :2026-08-10 조회수 146
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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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서석지 주일재 상량문에 기록된 조성 연대 관련 문구. 붉은색 선으로 표시된 부분에 “을유년(1645년)에 이 못을 파고 서석지라고 이름 붙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사진 영양군 제공)
영양군 산촌생활박물관이 국가민속유산 ‘영양 서석지’의 조성 연대를 1645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발견했다.
영양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영양 서석지 세계유산 가치 발굴 기초연구 용역’ 조사 과정에서 정자 부속채인 주일재(主一齋)의 상량문 3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영양 서석지는 조선 중기 학자인 석문 정영방(1577∼1650)이 노년을 보내기 위해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건립한 정자 경정(敬亭)에 딸린 전통 정원이다.
정영방은 1608년부터 연당에 별서를 짓고 고향인 예천을 오갔으며, 병자호란을 피해 연당으로 돌아온 뒤 별서 옆에 경정을 세우고 서석지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등에는 서석지가 1613년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기록돼 있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문헌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사팀은 경정의 자양재(紫陽齋)에 주일재 상량문 3점이 보관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영재 학예연구사가 해당 기록을 분석했다.
상량문은 1919년 주일재를 중수하면서 후손들이 선조의 기존 상량문을 보고 옮겨 적은 것이다. 기록에는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경정의 중수와 보수 과정이 담겨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작성된 상량문은 정영방의 손자인 눌재 정요천(1639∼1700)이 쓴 것으로 확인됐다. 상량문에는 “을유년에 이 못을 파고 서석지라고 이름 붙였다(歲乙酉 鑿斯池名曰瑞石)”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을유년은 1645년이다.
이번 기록은 서석지의 조성 연대를 1645년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헌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석지가 17세기 이후 후손들에 의해 지속해서 중수·보존돼 온 과정도 함께 확인됐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영양 서석지의 조성 연대뿐 아니라 19세기에 정자를 새로 지었을 것이라는 일각의 의문도 이번 상량문을 통해 해소됐다”며 “서석지가 국가민속유산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