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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때로 철학을 부른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철학이 스스로 정치가 된다. 최진석.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여전히 ‘철학자’가 먼저지만, 그의 최근 선택은 분명하다. 그는 다시 현실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왔다. 관조하던 언어를 내려놓고, 결단의 문장으로 갈아입은 채.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노장사상 연구로 학문적 깊이를 쌓아온 그는 오랫동안 “생각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사유는 늘 현실을 향해 있었다. 인간과 사회, 국가의 방향에 대한 질문은 강의실을 넘어 공론장으로 번졌고, 그의 문장은 점점 더 날을 세웠다. 결국 그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질문의 방식을 바꾸었을 뿐이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그는 안철수 후보 캠프의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정치의 중심에 발을 디뎠다. 이 선택은 일종의 실험이었다. 사상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 철학은 권력과 만날 때 어떤 얼굴을 갖는가. 그러나 선거는 끝났고, 실험은 완결되지 못한 채 남았다. 이후 그는 양향자 전 의원이 창당한 ‘한국의희망’ 상임대표를 맡으며 또 한 번 정치적 가능성을 탐색했지만, 곧 물러났다. 학계로 돌아간다는 명분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 현실에 대한 깊은 회의와 성찰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2026년 여름. 그는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더 이상 주변이 아니다. 중심을 향해, 아니 중심을 바꾸겠다는 선언과 함께.
신당 ‘건너가는 사람들’. 이름부터가 선언이다.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 기존 정치의 문법을 건너 새로운 질서로 이동하겠다는 결기. 그의 창당 선언문은 단호하다. “대한민국은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그의 문장은 늘 극단을 통해 본질을 드러내려 한다. 그는 지금의 정치가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낡은 정치’에 묻는다.
특히 그는 권력 구조의 변화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검찰 권한 축소와 경찰 권한 강화라는 흐름을 두고, 견제 없는 권력 집중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의 비판은 직선적이다. 지금의 정치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으며, 그 종착지는 ‘통제된 국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소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소 거친 비약일 수 있으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경고의 강도다. 위험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그는 “자유가 질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법과 제도가 점진적으로 언어를 압박하고, 그 결과 시민의 사유 공간이 좁아진다는 인식이다. 이 대목에서 그의 철학은 분명히 정치가 된다. 자유는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지켜내야 할 구체적 조건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따로 있다. “정치를 바꾸려면 정치인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 이는 개혁이 아닌 단절에 가깝다. 기존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 제도 내부의 자정 능력에 대한 회의가 응축된 문장이다.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려 하지 말라는 비유는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바꾸지 않고서는 정치도 바뀌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그는 ‘새 사람’을 말한다. 정치 경험이 없는 청춘들, 기존 문법에 길들지 않은 이들. 그들과 함께 정치를 다시 세우겠다는 구상이다. 이상주의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정치의 출발은 언제나 비현실처럼 보이는 선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건너가는 사람들’이라는 당명은 그의 철학적 이력을 은근히 반영한다.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넘어감’과 ‘비움’, 경계의 해체. 그는 지금의 정치가 고착된 언어와 이익 구조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개혁이 아니라 이동이다. 질서의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으로 건너가 다시 설계하는 일.
물론 질문은 남는다. 철학은 얼마나 오래 정치로 버틸 수 있는가. 사유의 정교함이 이해관계의 거친 충돌을 견딜 수 있는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사람을 시험한다. 과거 그의 정치 참여가 길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물음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귀환은 하나의 신호다. 지금의 정치가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개입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개입이 철학자의 언어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가볍지 않다.
정치는 결국 인간의 문제다. 어떤 인간이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얼굴이 달라진다. 최진석은 지금 스스로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생각하는 인간에서, 행동하는 인간으로. 그가 말한 ‘건너감’은 어쩌면 당의 이름이 아니라, 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동사일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그가 정말로 건너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건너편에 우리가 서 있을 자리가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