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이은미.-권혁선 작가, 부부의 특별한 전시회 두 개의 손, 하나의 시간

등록 :2026-08-28    조회수 215

정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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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기사]

 


"두 개의 손, 하나의 시간"
인천광역시교육청 펑생학습관 2층 갤러리 다솜에서 8월 21일부터 9월 22일까지 한달간 부부의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된 아내와 곁을 지킨 남편… 예술로 다시 삶을 그리는 부부작가 이은미·권혁선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한 사람은 흙을 빚는다.
한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캔버스를 바라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곁에서 흙을 만진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손이 결국 하나의 시간을 빚어냈다.

 

동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파스텔 인물화를 25년 동안 그려 오다  아크릴로 재료를 바꿔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이은미 작가와 인천해사고등학 교사로 40년을 근무하다 정년 퇴직한 뒤 공예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권혁선 작가. 부부인 두 사람은 최근 두 번째 부부전을 열고 관람객들에게 자신들의 작품과 함께 오랜 삶의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한 것은 작품 너머에 한 부부가 함께 견뎌온 시간과 사랑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40대 후반이었다.
권혁선 씨가 운전하던 차량에 아내 이은미 씨가 함께 타고 가던 중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이 사고로 이은미 작가는 척추를 크게 다쳤다. 이후 이은미 작가는 휠체어를 이용해 생활하고 있다.

 

한순간의 사고는 부부의 삶을 완전히 다른 시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시간을 원망과 좌절만으로 채우지 않았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예술이었다.

 

■ 휠체어에 앉아 다시 캔버스를 바라보다

 

이은미 작가에게 그림은 사고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됐다.
동국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회화를 공부한 그는 오랫동안 사람과 풍경, 꽃과 일상의 기억을 화면에 담아왔다.
사고 이후 신체의 자유는 크게 제한됐지만 그림을 향한 마음까지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작품에는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생겼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그의 그림에는 가족의 모습과 꽃, 바다, 일상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가족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에서는 얼굴보다 함께 바라보는 방향과 함께 걸어가는 시간이 강조된다


.
화려한 색채를 사용한 꽃 그림에서도 단순한 정물 이상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것은 어쩌면 사고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삶에 대한 긍정이며, 가족을 향한 기억이고, 아직 끝나지 않은 내일에 대한 응원인지 모른다.
이은미 작가는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안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날들의 ‘행복’이 있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된 ‘기쁨’이 담겨 있다.”
그에게 예술은 거창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에 가깝다.

 

■ 남편 권혁선, 곁에서 흙을 빚다

 

권혁선 작가는 교직에서 은퇴한 뒤 본격적으로 공예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 역시 전국공모 인천미술대전 2회 입선, 동아국제미술대전 입선, 대한민국환경미술대전 특선, 소사벌미술대전 입선 등의 경력을 쌓았으며 단체전 20회, 개인전 3회를 통해 꾸준히 작품세계를 넓혀왔다.

 

그가 선택한 재료는 흙이다.
흙은 손으로 만져야 형태를 얻는다. 부드럽게 주무르고, 눌러보고, 깎고, 다시 붙이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형태가 탄생한다.
어쩌면 권혁선 작가에게 흙을 빚는 일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다.
사고 이후 아내가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게 된 현실 앞에서 부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었다.
대신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다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이은미 작가는 캔버스에 기억을 그리고, 권혁선 작가는 흙으로 형태를 빚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삶을 살아냈다.

 

■ 닮으려 하지 않아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이번 전시의 제목은 ‘두 개의 손, 하나의 시간’이다.
전시 글에는 “서로의 작업을 닮으려 하지 않고 침범하지도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이 문장이야말로 이 부부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한다.
부부라고 해서 모든 것이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은 회화를 선택했고, 한 사람은 도자와 공예를 선택했다. 한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작업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두 발로 작업실을 오간다.
그러나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서로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때 두 사람의 세계는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이은미 작가의 그림과 권혁선 작가의 도자 작품이 한 공간에 놓였을 때 만들어지는 풍경도 그렇다.
회화와 도자기라는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지만 억지로 하나가 되려 하지 않는다. 각각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부부의 삶도 그와 같다.

 

■ “함께 살아가는 순간의 소중함”


이 부부의 작품에는 ‘가족’이 자주 등장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가족, 꽃을 바라보는 사람, 일상의 풍경들.
그곳에는 극적인 영웅담이 없다.
대신 평범한 하루가 있다.
사고를 겪은 뒤 그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두 사람은 누구보다 잘 알게 됐을 것이다.
건강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오늘 함께 살아가는 시간은 아직 자신들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예술은 장애를 극복했다는 성공담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장애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도 사랑과 가족,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은미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거창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순간의 소중함을 조용히 나누고 싶다”고 썼다.
그 말은 이번 부부전의 가장 정확한 제목인지도 모른다.

 

■ 사고는 두 사람의 시간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교통사고는 이은미 작가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그것이 두 사람의 시간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휠체어를 타고도 이은미 작가는 그림을 그렸고, 권혁선 작가는 흙을 빚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전시장을 만들었다.
삶이 우리에게 언제나 공평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한순간의 사고가 평생의 시간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주어진 삶을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갈 것인가를 선택할 힘이 남아 있다.
이은미와 권혁선 부부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 사람의 상처를 다른 한 사람이 대신 없애줄 수는 없다. 하지만 곁에 머물러 줄 수는 있다. 함께 견디고, 함께 웃고, 함께 작품을 만들며 다시 내일을 바라볼 수는 있다.
그래서 이들의 전시 제목인 ‘두 개의 손, 하나의 시간’은 단순한 전시명이 아니다.
한 사람의 손은 붓을 들고, 다른 한 사람의 손은 흙을 빚는다.
두 손은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늘을 살아내고, 지나온 시간을 예술로 남기며,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함께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은미·권혁선 부부가 교통사고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은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조용히 말한다.
가족의 사랑은 상처를 없애지는 못한다.
그러나 상처를 안고도 니이체의 말처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이번 전시는 그래서 미술전이면서 동시에 한 부부가 삶에게 보내는 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