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공약보다 먼저 따져야 할 것, ‘재정’이다

등록 :2026-08-24    조회수 144

정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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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인천시장 이음카드 공약 축소가 던지는 교훈…“정치적 약속보다 지속 가능한 재정이 우선”

 

정치인의 공약은 유권자와의 약속이다.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가벼워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공약에는 반드시 전제가 따른다. 바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다.

박찬대 인천시장이 취임 이후 제시했던 민생회복 공약 가운데 하나인 인천e음카드 캐시백 정책을 당초 계획보다 축소해 시행하기로 하면서 지방선거 공약의 현실성과 재정 책임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인천시는 24일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인천e음 캐시백 재개를 위한 779억 원을 반영했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21일부터 30일까지는 결제 한도 100만 원 이내에서 10% 캐시백을 지급하고, 10월부터 연말까지는 월 결제 한도 50만 원에 10% 캐시백을 적용하기로 했다.

당초 박 시장이 6·3 지방선거에서 제시했던 공약은 더욱 컸다. 올 하반기 100일 동안 인천e음 캐시백을 20%, 월 결제 한도 100만 원까지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공약의 핵심인 캐시백 비율과 적용 기간, 결제 한도가 모두 축소됐다.

문제는 단순히 공약 하나가 축소됐다는 데 있지 않다. 이번 사례는 지방선거에서 정치인이 공약을 제시할 때 ‘무엇을 하겠다’보다 먼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천시는 이번 제2회 추경에서 당초 예산보다 1조1551억 원을 증액한 17조241억 원 규모의 예산안을 편성했다. 그러나 재정 여건은 넉넉하지 않다. 시는 전 부서의 예산 집행 상황을 점검해 연내 집행이 어렵거나 시급성이 떨어지는 사업, 집행률이 낮은 사업, 이월 가능성이 있는 계속비 사업과 경상경비 등을 조정해 2114억 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재원을 인천e음 캐시백을 비롯한 민생 현안과 필수 공공서비스, 국고보조사업 등에 우선 배분했다.

박 시장이 캐시백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한정된 재원 안에서 출산지원, 청년월세, 대중교통, 아이(i) 바다패스 등 시민 생활과 직결된 사업에 2870억 원의 민생현안 예산을 배정한 것은 재정의 우선순위를 조정한 결과다.

하지만 여기에서 정치권이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공약은 선거 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정계획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유권자가 원하는 정책을 많이 제시할수록 유리하다. 캐시백을 높이고, 지원금을 늘리고, 교통비를 낮추고, 복지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은 듣기 좋다. 그러나 그 비용을 누가, 얼마 동안, 어떤 재원으로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그것은 정책이라기보다 희망사항에 가까워진다.

더욱이 지방정부의 재정은 중앙정부와 달리 무한정 확대할 수 없다. 지방세와 세외수입, 지방교부세, 국고보조금 등 제한된 재원을 가지고 도시의 미래 투자와 복지, 교통, 환경, 교육, 안전 등 수많은 분야를 동시에 책임져야 한다.

한 사업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면 다른 사업의 재원이 줄어든다. 이것이 예산의 본질이다.

따라서 앞으로 지방선거 공약에는 최소한 재원 조달 방안과 연간 소요예산, 임기 중 총사업비,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특히 현금성·소비지원성 정책은 더욱 그렇다. 단기간에는 시민들에게 즉각적인 혜택을 줄 수 있지만 재정 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원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면 시민의 신뢰도 함께 흔들린다.

이번 인천e음 사례는 정치인에게도, 유권자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좋은 공약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끝까지 지킬 수 있는 공약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약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화려하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시민에게 필요한 정책이면서 동시에 지방정부의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이 선거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재정 여건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공약을 쏟아내고, 취임 이후 재정난을 이유로 이를 수정한다면 당장은 박수를 받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정치에 대한 불신만 키울 수 있다.

반대로 선거 전에 재정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정치인은 당장은 덜 화려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를 얻는다.

지방자치의 성숙은 결국 공약의 숫자가 아니라 공약의 책임성에서 시작된다.

박찬대 시장의 이번 인천e음 공약 조정은 단순한 정책 변경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인천시뿐 아니라 전국의 지방정치가 선거공약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시민의 세금은 정치인의 지갑이 아니다. 미래 세대가 함께 사용할 공공의 재산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공약을 약속하기 전에 먼저 계산해야 한다. 얼마가 필요한가,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 몇 년 동안 지속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정책으로 포기해야 하는 다른 사업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약은 선거용 구호에서 시민과의 진정한 계약으로 바뀐다.

정치의 신뢰는 큰 약속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데서 생긴다.

이번 인천e음 논란이 우리 지방정치에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도 바로 그것이다.


공약보다 먼저 재정을 보라. 그리고 약속하기 전에 지속 가능성을 계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