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토)

낙청헌 보존 위해 나선 하정언 사무처장

등록 :2026-08-31    조회수 180

정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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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채의 한옥이 아니라, 근대 한국미술의 역사를 지키는 일입니다”


서울 종로 권농동에 자리한 근대 한옥 ‘낙청헌(絡靑軒)’을 보존하고 문화유산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중심에서 국민 청원운동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 하정언 낙청헌 보존·문화유산 계승 추진 사무처장이다.

 

낙청헌은 약 100년의 역사를 지닌 근대 한옥으로, 근대 한국화의 거목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가 주요 화실이자 거처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주소는 서울 종로구 권농동 161, 165-1번지이며 도로명주소는 율곡로10길 27-1이다.

 

하 사무처장이 낙청헌 보존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곳이 단순한 옛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낙청헌에는 조선 왕실의  어진화 전통과 근대 한국화의 발전, 후학 양성, 당대 문화예술인들의 교류가 한 공간 안에 겹겹이 쌓여 있다.

 

특히 1936년 1월 18일 낙청헌에서 이당 김은호의 문하생들을 중심으로 후소회(後素會)가 창립된 사실은 낙청헌의 미술사적 가치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대목이다.

 

후소회에는 백윤문, 장우성, 한유동, 김기창, 이유태, 조중현, 장운봉, 정홍거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훗날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했고, 표준영정과 화폐 인물 초상화 제작, 대학 미술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화의 발전을 이끌었다.

 

하 사무처장은 “낙청헌은 한 시대의 유명 화가가 살았던 집이라는 차원을 넘어선다”며 “한 세대의 예술가가 다음 세대의 예술가를 길러내고, 전통회화의 기법과 정신이 이어진 현장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강조한다.

 

조선 왕실의 어진화 전통, 근대 한국화로 이어지다


낙청헌의 또 다른 중요한 가치는 조선 왕실 어진화 전통의 계승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당 김은호는 고종과 순종 황제의 어진 제작에 참여했으며 창덕궁 선원전에 봉안된 역대 어진의 모사와 중수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이어져 온 도화서의 전통이 국권 상실과 함께 단절될 위기에 놓였던 시기에 궁중회화와 전통 채색화의 기법을 후학들에게 전승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이 평가된다.

 

낙청헌에서는 인물화와 미인도, 산수화, 화조·영모도 등 다양한 전통회화가 창작되고 교육됐다. 전통적인 인물 표현과 채색 기법으로 전해지는 이른바 육리문배채법 역시 이러한 전승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하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그는 “건물만 보존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공간에서 무엇이 이루어졌는지를 함께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세창이 이름 짓고 현판을 쓴 공간


낙청헌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깊게 하는 것은 이곳에 드나들었던 인물들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였던 위창 오세창 선생이 ‘낙청헌’이라는 당호를 짓고 친필 현판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당 김은호를 중심으로 당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만나 예술과 문화, 시대의 현실을 이야기했던 공간이라는 점도 낙청헌의 독특한 가치로 꼽힌다.

 

이당 김은호의 생애 역시 논쟁적 평가를 넘어 보다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은호는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신문 배포와 관련해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기록이 있다. 이후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등 민족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한 기록도 남아 있다.

 

특히 1923년 오세창과의 화답시, 1926년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에서 제작한 작품, 1937년 오세창과 함께 제작한 합작도 등의 자료가 거론되고 있다.

 

다만 김은호의 일제강점기 행적과 친일 논란에 대해서는 별도의 역사적 검증이 필요하다. 하 사무국장은 특정한 평가를 미리 정해 놓기보다 관련 사료를 폭넓게 조사해 공과를 포함한 전 생애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역사적 인물을 미화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특정 시기의 행적만으로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재단해서도 안 됩니다. 새로운 자료가 있다면 그것을 확인하고, 잘못된 부분은 잘못된 대로, 공적은 공적인 대로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사라진 뒤에는 복원할 수 없습니다”

 

하 사무처장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낙청헌이라는 ‘현장’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다.


문헌과 사진, 작품은 남길 수 있지만 실제 예술가가 생활하고 창작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공간은 한번 사라지면 원형 그대로 되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낙청헌은 건축적으로도 외벽의 연와조 구조와 화강석 기단, 기와지붕 등 근대 한옥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 사무처장은 “문화유산은 박물관에 들어 있는 유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사람의 삶과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 그 장소에 축적된 시간까지 보존하는 것이 진정한 문화유산 보존”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추진하는 국민 청원운동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청원에는 이당 김은호 기념사업회, 후소회, 상산 김씨 종친회, 낙청헌 보존과 문화유산 계승을 바라는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다.


 
청원 주체들은 낙청헌의 역사적·건축적·문화예술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서울시의 근대 건축자산 및 문화유산으로 보존·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낙청헌을 단순한 보존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고 ‘서울 근대미술·궁중어진기법 역사기념관’과 같은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제안하고 있다.

 

“종로의 작은 한옥에서 한국미술의 큰 역사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낙청헌이 위치한 곳은 창덕궁과 종묘가 가까운 종로의 역사문화권이다. 주변의 궁궐과 문화유산, 근대 역사공간을 연결한다면 근대미술을 주제로 한 새로운 문화관광 자원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하 사무처장은 낙청헌을 특정 문중이나 특정 작가만의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낙청헌은 누구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문화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이당 김은호를 둘러싼 역사적 평가 역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판단의 근거가 될 현장을 남겨주는 것입니다.”

 

그가 꿈꾸는 낙청헌의 미래는 과거에 갇힌 기념관이 아니다. 조선 왕실의 어진화 전통에서 근대 한국화로 이어진 예술의 흐름을 보여주고, 후소회 작가들의 작품과 자료를 살펴보며, 한국화의 전통기법을 체험하고 연구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화공간이다.

 

“문화유산은 미래를 위한 약속”

낙청헌 보존운동은 결국 한 채의 오래된 한옥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선다.


무엇을 역사로 기억할 것인가. 논쟁적인 인물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사라져가는 근대의 공간을 어떻게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하정언 사무처장은 말한다.


“역사는 책 속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고, 그림을 그리고, 제자를 가르치고, 시대를 고민했던 공간에도 역사는 살아 있습니다. 낙청헌이 사라지면 그 역사의 한 장면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시민들에게 낙청헌 보존 청원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낙청헌을 지키는 것은 낡은 한옥 한 채를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조선 왕실 회화의 전통과 근대 한국화의 역사,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흔적을 미래세대에게 건네는 일입니다.”

 

종로의 골목 한켠에 남아 있는 작은 한옥 하나. 그러나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시간은 결코 작지 않다. 낙청헌을 둘러싼 하정언 사무처장의 보존운동이 ‘개인의 옛집 보존’에서 ‘근대 한국미술사 보존’으로 확장돼야 하는 이유다.

 

https://forms.gle/VSSkDVx6GHzHz6Vj7
낙청헌 보존 및 문화유산 계승을 위한 국민 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