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일 (금)

아버지는 세상을. 어머니는 기억을, 딸은 그리움을 그렸다 9월 3~9일 계양구청 1층 아트갤러리… 고향 풍경과 가족의 기억을 화폭에 담아

등록 :2026-09-06    조회수 675

정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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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공미라 시인·서양화가, ‘그림에 머문 삶의 이야기’展… 아버지 1600여 점 연필화·어머니의 그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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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서양화가 공미라

 

 

한 사람의 그림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머문다. 때로는 한 사람의 그림을 넘어 가족의 삶과 기억, 사랑과 이별의 시간까지 함께 깃든다.

 

시인이자 서양화가인 공미라 작가가 30년 가까이 이어온 자신의 작품과 부모의 그림을 한자리에 선보이고 있다. 9월 3일부터 9일까지 인천 계양구청 1층 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그림에 머문 삶의 이야기’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회화전이 아니다. 그림을 매개로 한 가족의 삶과 기억,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가족의 기록’에 가깝다.

 

전시장 한편에는 공 작가의 작품과 함께 아버지 공춘식 씨가 남긴 연필화 일부가 전시돼 있다. 공 씨가 그린 작품은 무려 1600여 점에 이른다.

 

아버지는 5년 전부터 매일 아침 신문을 읽으며 마음에 남는 사진을 골라 연필로 그리기 시작했다. 신문 속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보고 스케치북에 옮기는 일이 하루의 일상이 됐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쌓인 그림은 어느새 100여 권의 스케치북을 채웠다.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하루를 살아가는 즐거움이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큰 병으로 71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힘든 시간도 있었다. 긴 투병 끝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몸을 추스르면서 가장 먼저 연필을 잡았다. 딸이 선물한 스케치북을 펼쳐 다시 그림을 그렸다.

 

공 작가는 아버지의 그림에 대해 “잘 그리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이 바라본 세상과 그날의 마음을 한 장 한 장 남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림은 그렇게 아버지의 하루가 되고, 삶의 기록이 됐다.

 

어머니 윤인순 씨의 그림에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시작되면서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던 어머니에게 딸은 그림을 권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딸이 곁에서 함께하며 하나씩 그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꽃을 그리고, 홍시를 그렸다.

 

기억은 조금씩 흐려져 갔지만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그때의 모습과 마음이 다시 살아났다.

 

공 작가에게 어머니의 그림은 ‘기억하는 것’과 ‘남겨두는 것’의 의미를 일깨운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그림으로라도 그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이번 전시에서 공 작가가 특별히 애정을 갖는 작품들은 고향의 시골집과 논두렁길, 골목길, 들에 핀 야생화와 식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화폭에는 오래된 집과 골목, 들판과 나무, 꽃 한 송이가 담긴다. 화려한 풍경은 아니지만 그 평범한 풍경 속에는 작가의 유년과 가족,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스며 있다.

 

특히 '작은 숨결의 꽃’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붉은 꽃을 통해 인간 내면의 회복과 생명력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이기도 한 공 작가는 눈앞의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풍경 속에 깃든 기억과 감정을 시와 그림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업은 결국 ‘보이는 것’에서 ‘느껴지는 것’으로 향한다.

 

2022년 중앙일보 회화전에서 은상을 수상한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오랜 시간 시와 그림을 함께 걸어온 작가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것은 딸의 30년 그림 인생과 부모의 삶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신문 속 세상을 연필로 기록했다. 어머니는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꽃과 그림으로 붙잡았다. 딸은 그 곁에서 자신의 기억과 고향의 풍경, 삶의 감정을 화폭에 옮겼다.

 

세 사람의 그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잊히기 전에 남기고, 사라지기 전에 사랑하자는 이야기다.

 

공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남편과 함께 가족의 시간을 하나씩 정리했다. 작품을 고르고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과정은 단순한 전시 준비가 아니라 부모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가족의 유대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부부가 함께 나누는 사랑과 연대, 가족 사이의 의리와 책임은 전시의 또 다른 풍경이 됐다.

 

삶은 결국 생로병사의 시간을 지나간다. 태어나고, 사랑하고, 늙고, 병들고, 언젠가는 이별한다. 누구도 그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림은 그 순간을 잠시 붙잡아 둔다.

 

한 장의 그림에는 그날의 햇살이 남고, 꽃의 색이 남고, 사람의 표정이 남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그림 앞에서 이미 떠난 사람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림은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가 관람객에게 건네는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예술은 거창한 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 부모가 자녀에게 남긴 사랑, 자녀가 부모에게 돌려드린 기억, 그리고 부부가 함께 지켜온 가족의 시간 역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과 작가 가족을 위한 계양구청의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다.

 

현재 계양구청 1층 아트갤러리는 작품을 충분히 감상하기에는 다소 더운 환경이라는 지적이 있다. 특히 전시 기간 동안 작가와 가족들이 현장에서 관람객을 맞으며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직접 설명하고 있는 만큼 적정한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 전시를 찾은 시민과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다.

 

좋은 작품은 천천히 바라볼 때 비로소 말을 건넨다. 관람객이 더위를 피해 서둘러 전시장을 나선다면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조용한 대화 역시 짧아질 수밖에 없다.

 

계양구청이 전시 기간 동안 쾌적한 관람 환경을 마련해 시민들이 작품을 충분히 감상하고, 작가와 가족들도 무리 없이 관람객을 맞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그림에는 삶이 머문다.


그리고 그 삶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공미라 작가의 ‘그림에 머문 삶의 이야기’는 9월 3일부터 9일까지 계양구청 1층 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30년의 작업과 부모의 시간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공 작가의 대답은 조용하다.

그림이다.

 

한 장의 그림을 남기는 일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그 약속을 지켜가는 과정 자체가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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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라작가 가족